에피소드 4
등장인물
도도혜-30대 초반,직장 다니는 맞벌이 주부,디자이너
배영준-도도혜의 대학 동창
#1
도도혜의 직장
도도혜는 직장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녀는 지금 임신 8개월.
입덧이 막 시작될 때의 과식으로 인해 몸무게가 20킬로나 늘은 상태.
오후가 되자 발이 퉁퉁 부어 신발이 들어가지 않고 있다.완전 텔레토비와 똑같은 도도혜.
발을 슬리퍼 위에 올려놓고 일을 하고있는데 전화가 울린다.
“예.도도혜입니다.”
“예….저….도도혜씨?”
“네.제가 도도혠데요.”
“도혜? 나……영준이야,배영준……!!”
순간….도도혜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어떤 남자.
그녀가 대학을 다니고 있을 무렵……같이 교양과목을 수강하고 함께 작업을 거들어주던
다른 과 동창의 얼굴이 하나 휙 스쳐간다.
그는 도도혜가 3학년때 군대 갔었다가 제대 후 곧장 이태리로 유학을 떠났던 동창이다.
그러나 군에 가 있었을 때도,이태리에 가 있었을 때도……
잊을 만~~ 하면 연락을 하고 잊을 만~~~ 하면 편지를 보내고…..
그러면서 6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러던 그가…..오늘 또 전화를 걸었다.
“도혜야! 나 귀국했어!!”
“어머…그….그러니……?”
도혜는 약간 떨리는 음성으로 전화를 받고 있었다.
갑자기 밀려드는 아련한 추억.
그는 지금 어떻게 변했을까.
“도혜야! 너 내일 시간 있니?”
“응……??”
“나 내일 그 쪽으로 가는데……네 얼굴이나 한 번 보고 싶어서.”
“어…그….그래? 글쎄….그런데 내가 내일 시간이 될 지 모르겠네…….”
도혜는 애써서 그와의 만남을 피하려고 했다.
6년이란 세월을 건너 이제 와서 그를 만나서 무슨 애길 어떻게 하나.
게다가 지금 그녀는 임신 8개월,몸이 부을 대로 부어서 어딜 나가기도 껄끄러운 상태였다.
“알았어.그럼 내일 전화 할 게.”
배영준은 즐거운 음성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는 지난 6년의 시간이 정지해 있다고 믿는 것 같았다.
#2
도도혜의 사무실,다음날
따르릉……
결국 전화가 또 오고 말았다.
도혜는 어정쩡한 자세로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도혜야!! 창문 너머로 함 볼래?”
도혜는 스을쩍 일어서서 창 밖을 보았다.
건너편 길가의 편의점에서 어떤 젊은 남자가 전화기를 들고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도혜는 그를 보자 갑자기 숨이 턱 하고 막혔다.
결국 이렇게 사무실까지 오고 말았다니!!
“응…그…..그런데……”
“너 점심 시간이 언제야?”
“나……지금 바이어가 왔는데……”
도도혜는 겨우 그를 그렇게 보내버렸다.
지난 6년동안 도혜는 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결혼도 했고…..지금은 임신까지 한 기혼의 몸이 되었다.
하지만 배영준 그는 도혜와 한참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군대를 갔고 ,곧 유학을 갔었다.
그에게 있어서 도혜는 아직도 청순하고 가냘프고 날씬했던 대학생의 모습 그대로 간직되어 있었다.
#3
도도혜 사무실, 또 다음날
결국 또 전화를 받고 말았다.
영준은 그녀를 안 보곤 못 견디는 모양이다.
그런데….도도혜는 그를 결코 보고 싶지가 않았다.
남편에 대한 예의? 기혼자로서의 의무?
그런게 아니었다.
도도혜는 지금 자신의 뚱땡이 된 모습을 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것이다!!
지금 그녀가 아기를 안 가진,여전히 날씬하고 이쁜 모습이라면 당장이라도 영준을 보러 나갈 것 같았다.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텔레토비 네명을 다 합친 것 만큼 넉넉했다!!
#4
도도혜 사무실 앞
도도혜는 잔뜩 불안한 마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거기엔 옛날보다 훨씬 세련되게 변한 배영준이 귀에 핸드폰을 들고 어디론가 열심히 통화하며 바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이태리물은 먹어 그런가? 훨씬 세련되어진 그에게선 유럽산 시가의 냄새가 났다.
“저어…..”
도혜는 큰 마음 먹고 영준에게 다가갔다.
영준은 자기를 향해 말을 거는 웬 뚱뚱한 임신부를 힐끗 쳐다보았다.
“저어…영준아!!”
한참을 지나서야 영준은 그 뚱뚱한 여자가 도혜라는 걸 알아차릴 수있었다.
배영준은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스르르 미끄러뜨리며 무너지는 듯한 시선으로 도혜를 쳐다보았다.
도혜는 최대한 안 그런척 웃으려 했지만….
그 순간 확 다가드는 모멸감에 얼굴이 뜨거워짐을 어쩔 수 없었다!!
#5
양식집
둘은 어색하게 앉아서 밥을 먹고 있었다.
별로 할 얘기가 없다.
영준은 이태리서 어떻게 지냈는지.지금 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을 했고 도혜는 남편 얘기와 회사에서 어떻게 지내는지에 관해 딱딱한 대화를 몇마디 나눴다.
도혜는 오늘 정말 나오기 싫었다.
차라리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녀석은 평생 나를 이쁘고 청순하고 가냘픈 여자로만 기억하며 살았을 걸.
배영준은 이렇게 생각했다.
오늘 도도혜를 만나길 참 잘했다.
이런 모습을 보지 못했더라면 평생 도혜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으로 살았을 걸.
세상에…..
아무리 시간이 약이라지만…..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냐??
둘은 밥을 먹고 차를 마신 다음,다음에 또 만나자는 실현가능성 없는 인사를 나눈 뒤 헤어졌다.
그 후……
도혜를 찾는 영준의 전화는 한 통도 걸려오지 않았다.
여배우 크레타 가르보가 죽을 때까지 세상에 나오지않은 이유.
도도혜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엔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