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이었다.
약간의 눈발이 날리는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려
음산하고 고독하던 도시를 벗어나 도망치듯 이곳...해남으로 와 버린것이...
"엄마...우리 어디가...?"
차 뒷좌석에서 눈내리는 차창밖을 신나게 구경하던 두아이들...
차가 톨케이트를 빠져 나올때쯤...
참고있던 궁금증을 그렇게 토해냈었다.
" 응... 외가..."
"야... 앗싸...신난다...히히"
"가서 눈싸움해야지...마당에 눈사람도 만들고..하하하"
"이렇게 눈이 조금 내리는데..눈싸움 할 수 있을까...? 거기는 따뜻해서 눈 내려도 다 녹을껄!"
"에이..그래도 눈싸움 할꺼야...흥, 미워 엄마.." "그래그래...같이 하자...엄마도"
눈동자를 굴리며 내 얼굴을 살피던 아이들이 눈싸움얘기를 하다 투정이다..
내 얼굴빛이 어두웠던것을 아마도 눈치채고 조바심하던 끝이었겠지...싶었다
그렇게 떠나온 서울생활..
벌써 6개월째 로 접어들었고, 어느새 아이들 입에선 남도 사투리가 즐겁게 흐른다
해남 내 친정은...작은 산 언덕에 아담한 녹차밭을 일구고 있다
그 겨울 꽁꽁 얼어붙어 풀하나 날것 같지 않던 언땅에서도 어린 녹차나무는 꿋꿋하게 자라
여름을 맞는다
아니..여름보다 더 푸르게 푸르게 몸을 가꾸었다
아이들이 눈싸움하겠다던 집 안마당은 알록달록 어여쁜 꽃망울들이 벌 나비들을 손짓하고
연못 잉어들도 통통하게 자라 철썩철썩 파도를 친다
아침이면 녹차밭 언덕위 대숲에 사는
장끼 식구들의 꿩꿩거리는 소리에 눈을 뜨고
이른 시간부터 밭이며 논에 나가는 동네사람들 부산스런 몸짓이며
목소리들이 게으른 나를 일으킨다
아이들은 이곳 학교에서 친구들과 사투리로 재잘거리고
사투리로말하는 선생님 말씀도
다 잘 알아듣게되었다고 자랑이다...하하
5월 운동회때 학교안에 들어온 병아리장사로부터 사온
500원짜리 병아리 두마리도
우리가 잡아준 지네며 달팽이, 지렁이들을 먹으며 튼튼하게 자라
어느새 얼굴이 빨개지고 벼슬도 조금씩 이마위에 올라오고
덩치도 중닭이 다 되었다
병아리 두마리가 마당안 풀숲을 헤치며
달팽이며 먹이를 찾아 쪼아먹는 모습은
꼭 내 아이들 같아 한참씩 한참씩 눈을 뗄 수가 없다
닭장에서 풀어놓고 나면 동네 도둑 고양이며 개들에 물려갈까 싶어
조바심나면서도..
내 아이들도 저렇게 스스로 제 먹을 것 찾을 수 있도록
자립시켜야할텐데....하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우리마을엔 서울서 보지 못하던 새들이 많이 날아오는데...
그중에 하나가 삔추..라는 새다
우리집 좌우에 몇백년된 팽나무가 두그루 있는데...
대숲에 둥지를 틀고 살면서 팽나무에 와서 망을 보고
온동네를 누비며 삐삐거리는 그 새는
이곳사람들 말로 삔추 라는 이름을 얻었다
실제로 들으면 음산하기까지한 그 삐삐거리는 새소리는
결코 이쁜 소리는 아니지만 작은 아기새들과 먹이찾아
서로 망 봐주며 내는 그 소리는 그들의 삶이다.
녹차밭어귀에 뽕나무 열매 오디, 보리수 열매, 매실, 자두, 살구...
우리집 식구들이 맛좀 볼까..하고 가보면
어김없이 그들이 몰려와 삐삐 거린다..
아마도 그나무들이 그들 영역이란 뜻이겠다
"얘들아 우리도 좀 같이 먹자..." 소리치며
아이들과 나무에 매달려 열매를 딸 때는
삔추새들 다 어디로 갔는지 조용하다 참 이상도 하지..
손닿는 아래쪽은 우리가 따먹고..
사다리 놓지 않고는 손이 않닿는 나무위쪽에 것은
삔추새, 제비, 참새 , 노란휘파람새, 산비둘기, 까치..들이 차례로 날아와 저마다의 소리를 내며 맛나게 먹고 간다
이쁜 청개구리도
까끔씩 창문안으로 폴짝 뛰어들어
병아리같은 내아이들을 꺅꺅 아우성을 치게하고,
엉금 엉금 응큼한 두꺼비는
막대기 휘두르는 나를 보고도 못본척 꿈적도 않아
쿵쾅쿵쾅 가슴을 뛰게한다
비 쏟아지는 밤
부엌에 나타난 지네에 물려 병원 응급실 신세를 지게도 되었건만
해남생활은 너무나 평온하고 따뜻하고 이쁘고 푸르며
나와 가족들을 살아있게 한다
지난 겨울 모든걸 던지고 떠나온 서울생활은
이제 이곳 해남에서의 푸른일기로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아픔만큼 성숙한다고 했던가..
나와 내 아이들도 생생하고 푸른 이곳에서
더욱 푸르게 자랄 수 있을것 같다
덜컹덜컹 경운기가 길을 울리며 지나간다..
모심기 끝난 논들은 멀리까지 푸르게 단장하고
뜨거운 여름 햇빛을 품는다
푸르게 살아내야지...이 여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