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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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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6)


BY 새봄 2003-06-22

드디어 남편이 나온단다.
어두침침하고 음습하고 자유를 저당잡힌 구치소에서 남편은 죄값을 치루고 나온다고
남편 거래처 직원한테 늦은 오후쯤 연락이 왔다.

기다리진 않았지만, 아니다 남편이 나와야 빚을 해결할 수 있으니 기다리긴 기다렸다.
보고싶진 않았지만, 아니다 실물을 보고 말을 해야 정리를 할 수 있으니 보긴 봐야했다.

청소를 해야겠지...
저녁을 해얄거야...
몸보신할 반찬이라도 준비해야지...
이방가서 치우고 저방가서 정리하고 수퍼를 냅다 갔다오고 쌀을 씻고
닭고기를 큰 냄비에 얹었다.
평소에 고기를 좋아했고 특히 삼계탕을 좋아했다.
한여름내내 구치소에 있었으니 복날이라고 해도 개의 국물이라도 먹었을리 만무고...
닭 껍데기라도 구경이나 했으려나?

닭은 뽀얗게 국물을 우러내고
밥도 다 되었고 저녁이 되어도 초인종 소리 한번 없이 조용했다.
아이들과 닭 국물을 한그릇씩 비워도 내집엔 여전히 찾아오는 손님이 없다.
아이들이 각각 자기들 방에서 잠이 들고 텔레비전만  왕왕 떠들어도
우리집엔 세식구와 개 한마리 밖에 아무도 없다.

오늘 분명 나온다고 했는데 잘못 알고 전화를 했나?
구치소에서는 뭔 차를 타고 집으로 가라고 오밤중에 내보낼까?
한 달 동안 술을 못먹어서 그동안 못먹은 술을 진탕 마시러갔나?
도박을 못해 손가락이 근지러워서 손가락 긁으러 갔나?
여자 구경을 하고 싶어서 여자보러 미시클럽에 갔나?

남편은 툭하면 외박을 했었다.
그럴땐 별 상상력을 다 동원해 나도 잠을 못이루고 밤을 새웠었다.
그러다보면 새벽빛이 청아하게 창안으로 슬그머니 들어왔다.
그때의 기분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머릿속이 뒤엉켜버려
나를 가다듬어야 할 필요를 절실하게 느낀다.
최악의 불행은 나를 미치게 할테니까 이럴땐 완전히 다른 상상력을 동원해 버린다.
병원 중환자 실에 있을거야. 머리에 충격을 받아 기억상실증에 걸렸을거야.
고깃배에 팔렸을거야. 바다만 보이는 바다에서 전화도 빼앗기고 배멀리를 죽도록 하고 있을거야.
죽었을거야.뺑소니 차에 치어 외모고 신분증이고 뭐고 피에 범벅이 되어 누군지도 모를거야.
가당찮은 상상력으로 매듭지을 때쯤 남편에게서 전화가 오던지
밤그늘에 쩔은 얼굴로 담배냄새로 도배를 한 남편이
여섯시 십분 방향으로 고개를 숙이고 나타나곤 했었다.

그랬다.
남편은 구치소에서 한 달만에 나온날도
아침이 되어서야 시꺼먼 얼굴로 나타나 나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우린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서로 할 말도 못하고 두려움만 가득한 현실이 또 다시 우리를 채근했다.

닭목아지를 비틀어도 아침이 온 듯
내가 해결해야 할 사건들이 하나씩 둘씩 내 숨통을 비틀 것이다.
그래도 아침이 오고 내일이 오고
여름 장마는 물러나고 가을 나뭇잎은 단풍물이 곱게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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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행하지 않았으면 깨닫지 못했을 게 많았을겁니다.
가정이라는 구속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남편과 같이 먹는 바지락 칼국수가 얼마나 따스한지도
아이들과 공원에 산책을 나가는 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도
그때는 몰랐습니다.

왜 지키지 못했냐고 너의 책임도 반반이라해도 이제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엇박자로 쳐대던 피아노 소리처럼 남편과 난 서로가 엉터리였고 엉망이였습니다.
여름이 다 갔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가을 냄새가 푸실푸실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