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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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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 일기


BY 남풍 2003-06-19

며칠 동안 돌아 오지 않던, 교환 일기장이 컴퓨터 책상 귀퉁이에 보란 듯 놓여 있다.

조금 전, 내게 혼난 딸이 뭔가 적어 놓았다는 표시다.

조심스레  갈색 체크 무늬에 예쁜 핸드폰 고리가 달랑 거리는 노트를  열어 본다.

역시~

딸아이는

 

''''오늘 좋은 일도 있었는데, 아까 엄마가 화 낸 일 때문에 달라졌다......

나래한테 화풀이 한 것도 아닌데, 그랬다고 화만 내고....엄마가 나를 싫어 하는 것 같다.

라디오에서는 사랑해라고 하면서 하루에 두번 껴안아 주는 것이 좋다고 하는데 엄마는 완전히 반대로다.'''' 라고 강하게 내게 반발하고 있다.

게다가  나중에 생각난 듯, (학원에 우산 두고 왔음, 혼내도 좋음)이라고 써서 내 화를 북돋우겠다는 영악한 계산에  웃음이 나왔다.

 

조용히 딸을 불러 ''''사랑해'''' 하며 안아 준다.

이미 글을 쓰며 화는 풀렸겠지만, 자신의 뜻이 내게 관철 되었다고 느낀 딸아이는 웃으며

돌아 나간다.

 

글이라는 것이 말보다 설득력이 있을 때가 있다.

또는 말로 다하지 못하는 것을 글로  쉽게 전하기도 한다.

딸아이도  교환일기장에  자신이 화난 마음을 쓰고, 엄마의 잘못된 판단에 글로써 항의 하지 않았다면 , 아이 가슴 어디엔가 조그만 상처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화난 엄마 얼굴을 앞에 두고 할 수 없었던 말을 혼자 앉아서는 엄마를 욕할 수 있는 것도,

글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아닌가 한다.

 

또한, 엄마인 나도 아이의 마음을 글로 읽어서 그렇지, 내 앞에서

''''나를 싫어하는 엄마가 왜 나를 낳았어요?''''한다면,  홧김에 손이 올라 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글이 말보다 좋은 점이 많다하여, 말을 대신 할 수는 없지만,

말로하면 늘 듣는 잔소리로 흘려 들을 것을 유명한 사람 말을 인용하며, 

아이에게 꼭 필요한 말을 들려 줄 수 있다는 것도 글이 장점이며,

아이와 바꿔 쓰는 교환 일기의 좋은 점이기도 하다.

 

비뚤비뚤 휘갈겨 쓴 아이의 글 뒤에 밤늦도록 정성스럽게

''''미안해, 사랑해...''''하며 나는 적을 것이고 딸아이는,

머리 맡에 놓인 노트에서 엄마의 글에 담긴 마음을 읽으며, 눈부신 아침을 맞이 할 것이다.

 

내 삶에서 글은 말의 모자람도 채우고, 엄마의 모자람도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