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설레이는 마음으로 공항을 향했다.오박육일 예정으로
중국여행을 하기로 결정한것은 다른 나라는 남편들과 다녀왔다
고 해서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중국으로 결정 했던 것이다.오후
여덟시 비행기인데 여섯시 까지 공항에 도착 해야만 했다.일행
은 여섯명이였다. 사정이 있는 세명은 참석을 못했다.우리 큰아
들 유치원 어머니들이 여행을 하는것은 이십일년 만에 처음이였
다.항상 점심먹고 차 마시고 이야기하다 헤여졌기 때문에 국내
여행도 해본일이 없었다.모두들 어릴때 소풍을 가는것 처럼 즐
거워 하며 미지의 나라 말로만 듣던 거대한 중국에 첫발을 디딘
것은 날이 어두워져서 였다.북경 서안 계림 코스였기 때문에 첫
날은 북경에서 밤을 보냈다.샤워 하고 한방에 모여서 웃고 떠들
다 두명씩 잠자리에 들었다.이튿날은 서안으로 향했다.땅이 넓은
나라라서 비행기를 타고 이동을 했다.지금 나는 상당히 머리가
혼란스럽다.가까스로 생각을 더듬어 글을 올리고 있는것은 계림
에서 겪은 내 인생에 있어서 영원히 잊을수 없는 경험을 했기 때
문이다.유명한 발맛사지를 하고 동굴에 가서 종유석과 동굴속을
통과 하는 레일위를 달리는 미니기차를 타고 배를 타며 동굴안을
구경하고 걸어나오려고 했을때 에레베타를 타고 올라가자고 한
친구가 말을 했지만 같이간 일행들이 다리 운동도 할겸 걸어 가
자고 해서 모두들 걸어서 밖으로 나왔다.그리고 버스를 타고 다
음 코스를 향했을때 한 친구는 피곤하다며 버스에 앉아 있었다.
우리 여섯명을 포함해서 일행은 열여덟명이였다.코끼리 산에 올
라가서 잠시 구경하고 버스를 탔다.혼자 앉아있는 친구를 보니
안됐다는 생각이 들어 괜잖아? 하고 물으니 피곤하다는 표정이
였다.그리고 잠시후 생각하기도 싫은 대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내뒤에 앉아있었던 그녀가 갑자기 온몸을 비틀며 정신을 잃어 옆
자리에 앉아있던 친구가 비명을 지르고 버스안은 순식간에 아수
라장이 되었다.마침 병원 가까운 곳이라서 급히 버스를 돌렸지만
모두들 놀라서 고개를 외면하는 사람 소리치는 사람 버스안은 공
포에 젖어있었다.입과 코도 한쪽으로 돌아가고 입속에서 피가 나
오고 있었다.그 짧은 순간에 만일 이대로 숨을 멎는다면 어떻게
하나 두려움에 떨면서 병원에 도착 했다.들것으로 옮기는 것도
힘이 들었다.그녀의 체중이 무거워 남자들도 힘겨워 했다.우리
눈앞에서 그런 증상을 보인것은 처음인지라 무슨 병인줄도 모르
고 병원 대기실에 앉아서 놀란가슴을 서로 위로 하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가지 다행스러운것은 우리 일행중에 부부팀이 네명
남자 두분 또 모녀가 한팀이 있었는데 남자두분이 여러모로 도움
이 되어주셨다.말이 통하지 않는 낯선곳에서 어떻게 할지 몰라
우왕좌왕 할때 그분의 도움은 우리들에게 구세주와 같았다.만일
우리끼리 갔을때 그런일이 일어났다면 이렇게 신속하게 할수없었
을 것이다.이젠 관광이고 뭐고 집에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
다.이상태로 환자를 서울로 데려 갈수는 없고 누군가 한사람은
남아서 보호자가 올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남자분이 말을 했지
만 누가 혼자 말도 통하지 않는곳에서 남을 수있고 남고 싶겠는
가.그리고 그것보다 그친구의 마비되는 얼굴을 보며 모두 무서움
에 질려서 옆에 있기도 두려워 했다.남으면 같이 남아야 한다고
결론을 내릴때쯤 그녀가 의식을 회복했다고 해서 병실로 들어 갔
는데 코에 줄이끼여있다고 이게 뭐냐고 묻는 그녀를 보니 안심이
되면서도 무서움은 가시지 않았다.링겔이 다 들어가고 그녀는 아
무일도 없었던듯 일어섰다.월요일날 출발해서 목요일날이었기 때
문에 아직 일정은 이틀이나 남아 있었지만 비행기표만 있으면 돌
아가려고 했는데 가이드가 알아보았지만 표를 구할수 없고 단체
비자라서 힘들다고 했다.병실에 남을것인가 호텔에 남을것인가
궁리 하다가 호텔로 가기로 했다.한국병원과는 달리 여러 가지로
불편한 병원이였다.방두개는 비워두고 여섯명이 한방에서 그녀를
지켜봤다.코는 왜그리 고는지 정말 듣고 있기가 힘이 들었지만
정신차려준것이 고맙고 고마웠다.십여년전에 그녀가 뇌암이라고
병원에 입원한적이 있었는데 퇴원해서 괜찮길래 오진인모양이라
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 했고 지금껏 탈없이 생활해 왔었다.가족
은 남편과 사별하고 세 딸이 있는데 모두들 효녀라서 늘 우리들
이 칭찬하고 있었다.큰딸은 결혼해서 싱가폴에 살고 있는데 매
달 생활비를 보내 온다고 했다.금요일 아침이 되었다 우리 일행
여섯명만 호텔에 남아 있겠다고 했더니 쓰러졌던 친구가 괜찮다
고 하면서 그냥 구경하자고 했다.우리는 가이드와 의논했다.무리
하지 않게 하는방향으로 결정이 났지만 다시 비행기를 타고 북경
으로 왔다.무사히도착했다.그리고 만리장성도 자금성도 그다음날
그유명한 서태후 한사람을위해 만들었다는 호수도 구경했다.이동
하는 내내 그녀의 상태를 엿보았지만 별다른 증상은 보이지 않았
다.만일 뇌출혈이였다면 반신불수가 되었을 텐데 간질환 같았다.
우리들 앞에서 발작한 일이 없었기 때문에 21년 동안 모르고 있
었던 것이였다.두 딸이 공항까지 따라나와서 부탁을 하더니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그런 증상이 있으면 말리지 않고 여행을
하게 했다고 딸들에게 나쁜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그 친
구는 우리에게 딸들이 중국은 힘들다며 가지말라고 했는데 본인
이 괜찮다며 왔다고 지나가는말로 한적이 있었다.얼마나 놀랐던
지 옆에 앉기도 사실은 겁이 났다.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내옆
에 앉았는데 마음이 조마조마 했다 .공항에 두시간 늦게 도착하
니 찬구 딸이 마중나와 있었다.제일 나이 많은 형님이 딸을 데리
고 한쪽으로 가서 야단치고 있었다.미리 그런 증상이 있다고 귀
뜸 이라도 했으면 덜 놀랐을 텐데 죽는줄 알고 모두 마음 졸이며
놀랐다는 말과 함께 섭섭한 소리를 하고 있었지만 아프고 싶어
아픈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안쓰럽기도 했다.어쨋든 일생 잊지못
할 여행이되었다.우리와 함께한 부부팀 들과 모녀팀 모처럼 회
갑여행이시라는데 죄송하기만 했다.모두들 그만하기 다행이라며
걱정해 주셔서 마음의 따뜻함을 느끼기도 했다.이번 여행은 관
광이라기 보다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우쳐 줬다.21년만의
외출은 그렇게 무겁게 지나갔지만 살아있는동안 남에게 폐를 끼
치지 않도록 자신의 건강을 돌아 보며 살지 않으면 안된다는것을
절실히 느낀 여행이기도 했다. 자신만을 위하는것이 아니고 남을
위하는 최소한의 배려이기도 하다는것을 느끼게 했다.우리 모두
자신의 건강을 돌아보면서 살아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