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옆 다용도 실에 아침에 씻어둔 상추가
한바구니나 남았다.
토요일이라 일찍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과
오늘 점심엔 삼겹살을 구워 상추쌈을 해먹으리라...
어제 저녁 내가 일하는 상가 윗층분이 커다란 봉지 하나를
들고 오셨댔었다. '이거 한번 드셔보세요.직접 기른것입니다'
하며 건네준건 보기에도 싱싱한게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상추였다.
열사람이 쌈을 싸먹어도 될만큼 엄청난 분량이었다.
고맙다고 받아 쥐고는 퇴근무렵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상추봉지로
막으며 집으로 왔었다.
예전 나어릴때 상추는 고기없이도 찬밥과 된장만 있으면
훌륭한 반찬이 되곤 했었다.
거기에 풋고추가 있다면 금상첨화였을뿐 상추 그 자체로도 고소름하여
따로이 고기를 준비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비닐하우스에선 재배한 탓인지 요즈음 상추는 고기없이
먹기엔 어딘지 맹숭하지 않던가...
오늘 아침 어제 받아온 상추를 식탁에 올렸다.
농약도 치지 않고 직접 텃밭에서 기른 상추라니 옛날 생각하며
그냥 된장에서 쌈을 싸먹어 보자 싶었다.
시장에서 파는 상추에 비하면 작고 여려보이는 상추 두어개를
겹쳐서 밥을 얹고 된장이 많이 섞인 쌈장 위에 한창 맛이 든
열무김치를 올려 먹은 상추쌈은 상상외로 훌륭한 요리가 되어 주었다.
'맛있다'고 서로를 올려다 보며 남편과 나는
뜻밖의 기쁨을 발견한양 모처럼만에 맛난 아침식사를 할수가 있었다.
오늘은 음료수라도 사들고 가서 상추 잘먹었노라고
인사를 해야지 생각해 본다.
상추를 보고 있노라니 작년 이맘때의 일이 떠오른다.
일요일 저녁, 마침 고기를 사다두고 상추를 잊고 와서
난감해 하고 있었을 때였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는데
아이 유치원 원장님이 셨다. 지금 유치원으로 아이를
보내달라고 하셨다.잠시후 유치원엘 다녀온 아이손엔
봉지 두개가 달랑거리고 있었는데 하나는 상추가 든 봉지였고,
다른봉지엔 쑥갓이며 아욱이 들렸었다.
'선생님이 자연학습장에 다녀 왔는데 상추랑 쑥갓이 많아서
엄마 갖다 드리랬어'..
그날 저녁 우리식탁엔 선생님이 손길이 그대로 묻어나 있는
싱싱하고도 여릿한 상추가 한바구니가득 담겨서 식탁을 풍성하게
해주었다.
잠시 엄마 생각이 나서 목이 메기도 했던것 같다.
선생님이 보내주신 정성이 담긴 싱싱한 상추는 그냥
한끼의 식사 이상의 감동을 주었던것 같다.
나도 작은 텃밭을 가꾸고 싶단 소망을 품고 살아간다.
아직은 소망일 뿐이지만 직접 씨를 뿌리고 뿌린 씨앗에서
발아한 작은 싹을 보며 행복에 젖고 싶다.
그 작은 싸들이 제법 키를 키울 때즈음엔 한번쯤 솎아도
주어야 하겠지. 그 솎아낸 여린푸성귀를 내이웃과 나도
나누어 먹으며 내가 느낀 행복의 조각을 나도 그들에게
선물하고 싶어진다.
'사랑은 전염된다'라는 어딘선가 읽은 글귀가
문득 떠오르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