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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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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여행


BY 나비 2003-06-13

이놈들아~``
여기 주소가 뭔지 알아?
명동 일번지야..일번지..
니들 책상하나가 백만원이 넘는 금싸라기야.
비싼 땅에서 공부를 하면 남들보다 몇배는 잘해야할거아냐.
그때 백만원이면 지금은 억~! 으로 양쪽 뺨을 치고도 남는 돈이다.


그 시절은 강남도 허허벌판이었고 여의도도 아직 생기기 전 모래만
푸석거리면서 황사 날리듯이 날리던 시절이었다.

오로지 명동
모든 상권과 모든 유행이 모여들면서 창조창조 재창조가 되던곳 ,
그곳은 명동 일번지 였고, 학교는 그 중심에 있었다.


비싼땅에서 공부하는 우리들에게 비싼만큼 설움이 많았으니.
100 미터 달리기할 공간이 없었다
가로로도 100 미터가 안되고 세로로도 100 미터가 안되고
심지어는 대각선으로도 100 미터가 안되니
우리의 체력장은 7~80 미터로 기록이 되곤했다.
그 80 미터도 운동장이 아니라 성당에서 수녀원 가는 길,
승용차 한대만 꽉 차서 갈수있는길인데,
우리들의 체력장 100 미터 연습장소 였다.


어느 햇볕뜨겁고 바람 한점 없던 날의 체육시간에
두아이가 탕! 하는 총소리와 함께 바람처럼 달리고 있을때,
장난기 많은 신부님 한분이 뛰고있는 아이들 뒤로 차를 바싹 들이대면서 크락션까지 빵!빵! 울리면서 아이들 뒤를 바짝 따라 달리셨다.
혼비백산한 아이들은 달리 피할곳이없으니 앞으로 전속력으로 달려나가고 골인지점에 도착했을때에는 사색이 다되어 있었다.


신부님은 차에서 내리시며 "나때문에 기록 갱신한줄알아라.최고의 기록이 나오지 않았느냐" 며 호탕하게 웃으시는데,
아이들은 한쪽에서 숨 고르느라 원망할 새 도 없다.



학교문을 들어가기 전 에 성모병원이 있다.
병원뜰 살짝 옆으로 동굴을 뒤로하고 성모마리아가 서있다
그 앞에는 장미가 계절되면 아름답고 풍성하게 꽃을 피우기도 하고,
바람 불고 눈 내리는 날에는 소복히 쌓인 눈더미 위로 무릎끓고 기도하고 간 어느 간절한 신자의 무릎자욱이 선명히 찍혀 있기도 했다.
마리아님은 늘 한결같은 미소로 기도하는 자의 등을 내려다 보며
위로도 주시고 용기도 주시는듯 했다.


언덕을 올라 고풍스렁 성당을 지날려면 잠시 망설임에 빌걸음이 느려진다.성당안으로 들어가서 기도를 드리고 학교로 갈까..아님 그냥 등교할까.망설이다가 무거운 문을 삐걱 거리며 열고나면 적막함과 고요함과 서늘함이 온 몸을 휘돈다.
고개들어 쳐다보면 스테인 그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아름답고
신비한 빛 과의 만남으로 더욱 마음은 숙연해진다.
돌그릇 안에 있는 차디찬 성수를 조심스레 손가락으로 찍는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아멘...
성당안에는 무겁고 차가운 적막감으로 기도소리가 더둑더 울려퍼지면서
하늘로 올라가는게 아니라 내 발등으로 자꾸만 떨어지는것 같다.

점심시간...
항상 나오던 느릿하고도 오묘한 음률..
수녀님들의 낭랑한 합창같은 대답소리..

학교안에는 교실이 있는 건물과 수녀님들이 생활하시고 기도하시는
건물이 섞여있었다.

수녀원은 있는데..
수녀님들은 다니시는걸 볼수가 없었다 ,


가정실습시간,맛있는(?) 요리라도 하는날이면 한접시 싸가지고 수녀원 문을 두두린다. 그러면 문은 안열리고 조그만 구멍으로 손이나와서 고요한 목소리로 고맙다는 말 과 함께 살짝 가지고 들어간다.


우리는 평생 그 안에서 나올수없다느니..
기도만 하느라고 무릎에 굳은살이 이~만큼 배겼다느니..
수녀님들이 쓰시는 모자(?)안에는 머리가 길다느니..
홀랑 깍아서 하나도 없다느니.
많고 많은 호기심과 궁굼함으로 늘상 그곳을 기웃거리지만 얻어듣는건 하나도 없었다.


종교시간
배불뚝이 신부님이 들어오셨다.
근엄하지도 거룩하지도 존경스럽지도 않은
너무너무 재미있어서 아이들을 깜박 넘어가게 만드는 재주가 뛰어난
신부님.

모두 거룩하고 신비스러울줄 알았는데, 그 신부님은 충격적이었다.
늘 자전거를 타고 다니시며 아이들 뒤꽁무니를 ?아다니며 애들이 소리를 깩깩 지르며 도망다니는걸 보면서 아주 즐거워하셨었다

종교시간이 아니라 잡담시간 혹은 인생상담시간이 되어서 많고많은 이야기로 한시간은 늘상 아쉽게 가버리고 말았다.
시간만 있으시면 아이들 근처에서 얼씬거리시며 어떻게 한번 낑겨볼까 노심초사하시는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있어서 웃움을 일렁이게 하곤한다.


조그만 학교..
넓지않고 답답하게 옹기종기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한자리에
모여있던 학교 그 조그만 장소에 수녀원도 있고 고아원도 있고, 수녀님 일하시는 작업실까지 있어서 다니던 시절에도 참 좁기는 좁다라고 생각 많이 들었었다.


어느날 ...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고도 30년이 가까와질 무렵
따뜻한 햇살이 내려 꽃이던 시간에 점심시간에 울려퍼지던 기도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성당의 돌집에서 나오는 찬기운이 느껴지기도 하고 차에게 치일까봐 죽기살기로 달리던,
그 아이들을 바라보며 웃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왁자하게 들릴때..


컴안에서 학교를 찾아봤다.
너무 오랜만이던가..
마치 헤어진 애인을 만나듯 설레임에 열어보는 학교는, 1985년에 너무도 좁은관계로 중학교를 폐쇠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섭섭함과 허전함으로 마음이 썰렁해졌다.
마치 친정이 나 모르게 이사를 가버린 느낌이다.
다른학교들은 싼 땅 찾아서 멀리멀리 이사도 잘 가던데,
그 비싼땅에 앉아서 좁다고 학교를 없애버리다니, 아쉬운 마음이다.


없어진 학교 보다는, 너무 늦게 그 사실을 알아버린 게으르고 관심조차없었던 미련하고 답답한 내마음에 대해서 화가났다.


뒷뜰 계단위에서 빨지않아 회색으로된 실내화를 꺽어신고
김치..치즈 해가며 사진찍던 나!
케세라세라가 유행하던시절.
진지하게 우린 그런말 쓰지말자고 친구와 약속하던 나!
교생선생님과 꽃밭에서 환하게 웃으며 단정하게 사진찍던 나!
무용발표회날 한복 옷고름이 너무길어서 옷고름을 점점 더 밟아 나오다가 급기야는 넘어져 버린 나!
합창대회때 부르던 "숭어"가 아직도 입에서는 흘러나오는데...


운동장 가운데, 교단보다도 더 중앙에 서 계시며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던 그 마리아님은 아직도 있을까?
뒷뜰 콜로세움 광장처럼 계단이 줄줄줄 있던 그곳은 지금도 아이들이 앉아서 지껄이는 얘기 소리가 새 소리처럼 날아다니고 있을까?


그시절...
오고가며 성당안에서 드리던 기도소리
병원 앞뜰에서 무릎끓던 마음 학교안에 울려 퍼지던
"천주여~~~~ **하소서~~~~"
들리던 낭랑한 기도소리...



꿈결같이 바람같이
나부끼는 깃발같이
강물같이 흐른시간
아쉬운맘 돌아보니


굽이쳤던 지난세월
돌이켜서 생각하니
웃음소리 낭랑한데
웃던아이 어데갔나


이내마음 순순한데
허영세월 쏜살같네
지난시간 생각하니
허전한맘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