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는 나보다 일곱살 많다.
가장 오랜 기억의 조각들을 맞춰보면
거기에도 나는 언니와 둘이 있다.
언니는 처음부터 나보다 아주 나이가 많았다.
내가 네 살일 때 언니는 열 한살이었으니까.
언니는 머리가 좋고 똑똑했다.
국민학교에서 전교 어린이 부회장을 했다.
사는게 바빠서 입학할 때 한번 따라가고
졸업식에도 못간 어머니 입장에서 보면
대단한 딸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봐도 언니는 빛이 날 정도로 대단했다.
학교의 남학생들은 언니의 오만한 기세에 눌려
전부 바보처럼 보였고 언니는 여왕이었다.
언니는 나의 전부였다.
집에는 책 한권 없었는데도 언니는 유식했다.
알고 보니 학교 도서관에서 매일 책을 섭렵하는 것이었다.
내가 다섯 살부터는 요즘 백권짜리 세트로 나오는
세계 명작동화 보다 더,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여름밤, 마당의 평상에 걸터앉아서는 다리를 흔들며
언니가 가르쳐주는 동요와 가곡을 불렀고
무릎을 베고 누워 이야기를 듣다 잠이 들곤 했다.
어린 날 언니는 내 배움의 선생님이었다.
국민학생일 때 나는
반의 합창부원이자 독창부 대표였고
그냥 쓴 동시들이 선생님의 칭찬을 받았다.
어줍잖게 글짓기 대회에 나가 상도 여러번 타서
중학교에 가서도 자연스럽게 문예부원이 되었다.
시를 쓰려고 하니 독서의 필요성이 절실하여
언니가 그랬던 것처럼 방과 후면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는데 언제나 폐관할 때까지 남아 있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좀 먼 거리이기는 했지만 걸어서 왔다.
버스를 타면 왠지 글을 읽은 감동이
사라져 버릴 것 같아서였다.
무섭긴 했지만 책가방을 들고 타박타박 걸어오다 보면
머리 속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내가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시 구절이 떠오르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생각들도 끝이 나면 나는 언니를 생각했다.
언니도 아마 이랬을거야...
언니가 중학생일 때 여고생일 때
도서관에서 책 읽은 다음에는
나처럼 이런 생각을 했을거야...
그렇게 언니를 닮고 싶었다.
언니는 당시의 집 형편에 비해
너무 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큐는 검사할 때 마다 전교에서 제일 높았고
미술이며, 글짓기며, 주산이며, 운동회며
상이란 상은 모두 언니가 휩쓸었다.
그렇게 영민한 언니였기에 사춘기도 누구보다
혹독하게 치렀다. 사춘기 때의 언니는 흡사
검은 재규어처럼 누가 한마디만 해도 물어뜯을 것처럼
으르렁거렸다.그래도 나에게는 한결같은 언니일 뿐.
연전에 이런 책이 히트를 쳤었다.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어쩌구 하는.
나는 말 할 수 있다.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언니로부터 배웠다고.
어렵고 슬프고, 말하지 못할 모든 아픔을
함께 겪고 기억하는 언니가 있어
나는 바르게 자랄 수 있었다.
현재의 내가 존재 가능한 것도
언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언니는 나에게 모든 것을 주었다.
하지만 언니는 장녀였기 때문에, 그때는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이었기 때문에...등등의 이유로 가장
못 받고 언제나 희생하며 살았다.
이제 언니는 거의 엄마처럼 느껴진다.
하마, 춤꾼(이년째 스포츠 댄스를 배우고 있음)이라고
놀려도 하하하 웃으며
지랄하기는...
이 한마디로 나를 제압한다.
몇년 전에 수의를 장만해 두셨다는
엄마의 나이가 불안하다가도
언니를 생각하면 두려움이 가신다.
엄마가 불시에 가셔도
나에겐 언니가 있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 모두 아들아들아들들들들...
꼭 있어야 해...미친 듯이 외쳐도
나는 언니가 있어서 좋다.
오빠나 남동생만 있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것이다.
언젠가 언니에게 어릴 때의 이야기를 해 보았다.
정작 언니는 자신이 나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주었는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그래서 언니지.
언니가 기억 못하니까 내가 다 기억하고 있잖아.
우리 둘째도 나처럼 행복할 것이다.
엄마 아빠가 언니를 만들어 주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