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충청남도 홍성군 은하면 장재울이라는 곳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장재울이라는 곳이 산속에 묻혀있는 지형에 자리 잡고 있어서
그런지 광천읍에 나가려면 십오리길을 걸어가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 여자 개구장이 이면서 동네 대장이었다.
어찌나 아이들을 통솔하는 능력(?)이 좋았던지 모른다.
아침에 엄마가 넓은 마당에 고추를 널어 놓으면
오후에 고추를 걷는 일은 대부분 내차지였다.
그러면 나는 동네에서 뿔뿔이 흩어져 있는 아이들을 부르기 위해
감나무로 올라갔다.
그때는 어쩌면 그리도 다람쥐처럼 나무를 잘 탔는지 맨 꼭대기
까지 올라가서 아이들을 불러 제꼈다.
그런다음, 아이들이 고추를 걷기 시작하면
나는 나무위로 올라가 홍시를 땄다.
일종의 간식인 셈이었는데 그때 먹는 홍시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른다.
치마를 팬티고무줄에 말어 넣고(그때는 허벅지 팬티 부분에
꼭 고무줄이 들어가 있었다)꼭대기까지 올라가 아슬 아슬하게 감을 딸때의 스릴이 너무나 좋았다.
가끔 그 밑을 지나는 동네 아저씨들이 '아이고``가시나가 참말로`~~'하면서 놀려댔지만 그것은 이미 그들에게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의 가을은 그런 선머슴아 같은 것으로만 기억되지는 않는다.
그렇게 수더분했던 반면 나는 책읽기를 즐겼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언니가 읍네의 친구에게서 빌려오는
그집 아이의 동화책을 받기 위하여 늘 언니를 마중갔고
저 멀리 언니의 얼굴보다는 오늘은 어떤 책을 빌려왔을까?,하는
마음이 늘 먼저였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던것으로 기억된다.
심지어 방학때 오빠들이 놓고간 <선데이 서울>이나
아버지가 농사일에 관련되어 구독하시던 <새농민>도 빠짐없이
읽어댔다.
그런류의 책에서 뭐를 얻고자 했던것은 아니었다.
다만 다식성인 내가 뭐든지 읽으면 그저 잘 소화하고 상상하기를
즐겼을뿐 아니라 그것을 오래도록 간직했다.
지금쯤 내 고향의 감나무에는 어떤 가을바람이 묻어있을까?
예전 한 계집아이의 그 낭만적이고 감성적이던 느낌도
아직 달려있을까?
오늘 문득 어린 내가 되어 다시 홍시를 따고
재채기를 연신하며 그 맵던 고추를 걷고 싶은 마음은 뭘까?
그리고 그때 그 아이들은 어디에서 또 한번의 가을을
맞고 있는지....궁금하다.
가을내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