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녀석과 종종 어울리는 한 사내아이가 있었다.
오며가며 들리는 소리엔 그 아이와 그의 가족 이야기가 있었다.
사랑을 갈구함에서 나오는 조숙함과 호기심은 심심한 아줌마들 눈엔
말썽꾸러기에, 뭐 저런 애가 다있나 하는걸로 밖엔 안보였던게다.
그위에 5살위에 누나는 떨어져 사는 부모님에 대한 알거 다 알아버린 눈치로 정숙치 못했는가보다.
그 아이 엄마는 약주를 좋아한다더라...등등
오며가며 들리던 소리는 그아이와 그 아이의 가족을 향한 곱지 않은 시선들이었다.
하지만, 내가 보는 그 아인 보통의 아이들보다 조금 아주 조금 더 성숙했고, 바른 소리 잘하고,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고, 밝고 명랑했다.
언제나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이 자상하고 따뜻했으며, 가끔씩 놀러와서는 엄마를 위해 뭔가를 해주어야 한다며, 용돈모으는 이야기등을 하고 가곤 했다.
얼마전에도 우리와 저녁을 먹으며 어버이날 드릴 선물과 꽃을 사기위해 용돈을 모으고 있다며, 밥 한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돌아갔다.
내가 기억하는 그 아이엄마는 무척 여리고 자상했었다.
일학년때 아들생일이라며 처음으로 생일 잔치 해주겠다고 여러명의 같은 반 아이들을 데리고 롯데리아를 갔었다.
난 그때 수술받고 퇴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서 요양중이었는데, 전화가 왔다. 생일파티하고 나오다가 계단에서 넘어져 아이가 다쳤다며 대학병원 응급실로 오라는 것이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놀란가슴 진정시키며 도착해보니 그 아이엄마는
미안하다며 처음으로 생일 잔치 해 준다 했다가 괜히 아이만 다치게 했다고 울면서 우리 아이를 돌보고 있었다.
다행히 아이는 고추에 작은 훈장을 남기고 아무 이상없이 낳았지만
두고두고 그 일을 미안해 했다.
따지고 보면 그 아줌마의 잘못도 아닌데 말이다.
그리고 얼마후 추석이 지난 며칠후에 그 아줌마의 전화를 받았다.
혹시 자기의 아이가 거기에 있느냐며 말이다.
난, 저녁이 다되었으니 먹여 보내겠다고 했고, 그이는 고맙다며
저녁메뉴가 뭐냐 물었다. 난 갈비찜이라했다.
그이는 밝은 소리로 고맙다 하면서 부탁아닌 부탁을 했다.가끔 밥 먹었는지 물어봐 달라고, 일하러 일찍 나가면 밥을 차려놓고 가도 안먹을때가 있는것 같다며 걱정스레 말을 건네왔다. 난 오히려 댁의 아드님때문에 우리 아이ㅣㅣ도 밥을 많이 먹는다ㅏ며 걱정하지 말라했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고, 말을 주고 받은 마지막이었다.
어떤 사연으로 남편과 떨어져 살고 남들의 이야기 대상에 물망에 올라
쉼없이 오르내리는지는 자세히 모른다.
하지만 난 이해한다. 어떤 괴로움이 있어 그것을 술로 풀수도 있고,
갑갑한 집안에 있으면 숨이 막혀오는것처럼 느낄때가 있다는 것을..
난 그이를 이해하고 싶다. 그이가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괴로움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비록 취중에 계단을 잘못 디뎌 집앞 현관문앞에서
넘어져 아무 소리 없이 죽음을 맞이했을 그 안타까움을 이해하고 싶다. 이 얼마나 허망한가. 어린 아들녀석의 이름한번 제대로 불러보지 못하고 새벽녁 찬 바닥에서 쓸쓸히 운명을 달리했을 그이를 위해
기도한다.
내가 보내고 있는 이시간에 감사하고, 이 모든것에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 해준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