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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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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78) 가아!~


BY 남상순 2003-05-16

새벽기도를 가는데 한 남자가 내 앞에 200미터 쯤에서
가방을 메고 두벅두벅 고개를 떨구고 걷고 있었습니다.
출근을 하는 노동자의 하루가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뒷모습만 보아도 금방 중년이후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잠시 후 내 앞으로 어떤 아주머니가 황급히 뛰쳐 나왔습니다.
치마도 구겨져 접힌채로 부지런히 나오더니 소리를 지릅니다.
"가아!" (이말은 여보 잘 다녀오세요!라는 말의 줄임말로 들립니다.)

제법 큰 소리를 지르고는 그 남자의 뒤통수를 잠시 쳐다 봅니다.
그 남자가 넉넉히 들었을 것 같은 거리였습니다.
남자는 뒤로 안 돌아보고 두벅두벅 여전히 걷습니다.

어쩜! 한번 돌아보고 가지...!무뚝뚝하긴...!
그남자가 마악! 담모롱이를 돌아갈 즈음이었습니다.
아주머니는 다시 한번 "가아!" 아까보다 작은 소리로 말하고는
다시 황급히 집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뒤따라 나도 걷다가 놀랬습니다.
그 남자가 뒤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여자가 그때까지 서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습니다.
애써 여자가 들어갔을 즈음에 돌아 본 모양입니다.

그러더니...이번엔 더 놀랬습니다.
담모랑이를 돌아서서는 어깨까지 제껴지도록
자기집 쪽을 바라보더니 사라졌습니다.

가슴에 찡!~ 하니 파장이 일었습니다.
그것이로구나! 표현없이 살아온 우리네 정서는
저리도 멋적고 매력없고 무심해 보이지만
그렇게 물밑 깊은 속에서 하나가 되어 있었구나.

여자가 한번 볼때 남자는 두번 돌아보는구나
서로 눈빛 마주하는 교감이 없어도
서로 안아주며 토닥여주던 못해도
서로 중심으로 생각해 주는 사랑만으로
넉넉히 가정이라는 거목을 버티어 낼 수 있었구나.

그 둥지에서 새들이 노래하고 꽃들이 피어났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