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큰 딸은 살림밑천이란 말이 있다.
왜 그말이 생겨났을까만은..울 언니를 보면 맞는것도 같다.
지나가는 버스라도 탈라치면 한참을 걸어나가야 하는
첩첩산중 두메산골...
가난한 시골 살림에 일찍 돈 벌러 나간 언니는
우리집의 대들보였다.
달달이 보내 오는 월급으로 생활을 했었으니.....
명절이 다가오면 언니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기억이 남아있다.
자신을 위해서는 십원한장 쓸 줄 모르고,
오로지 부모님과 동생들만을 위해서 살았던 언니..
그런 언니 덕에 난 호강이라면 호강을 했다.
노트부터 참고서까지 필요한건 다 사서 보내주곤 했으니...
철 없던 어린마음에도 나도 크면 언니처럼 동생들한테
잘해줘야지....필요한건 다 사줘야지...했었다.
막상 사회생활이라고 하면서 돈을 벌어보니,
언니가 얼마나 아끼고 모아서 우리에게 베풀었는지
한없이 넓은 언니의 마음을 비로서 이해하게 됐다.
결혼이라도 하면 편하게 잘 살줄 알았는데,
언니 복이 그랬는지, 참 힘들게 산다.
워낙 친정하고 멀리 살다보니,양념거리하나 가져가질 못한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서너번 아버지께서 택배를 보내시지만,
어디 가까이 사는 나만큼이야 되겠는가...
흔하디 흔한 차한대 없이 언니네는 십오년을 살았다.
올해초....
드디어 언니네도 차가 생겼다.
언니 마음이 어땠을까..
버스를 서너번 갈아타지 않아도, 한번에 올 수 있으니..
집에 올 날만 손꼽아 기다리더니, 드디어 시골을 왔다.
내려오면서 길 물어보느라 전화도 수십번...
얼마나 좋아하는지 목소리부터가 씩씩하고 달라보였다.
겨우 하룻밤 보내고, 올라가던날....
가기 전날부터 말그대로 기둥뿌리 뽑을 사람처럼
있는것 없는것 다 챙긴다..
엄마는 엄마대로 하나라도 더 주려고 온 집안을 헤매시고.
그 모습이 보기 싫은게 아니라,,
괜시리 눈물이 났다.
맨날 오고 싶은 친정집....
너무 멀고 차가 없어 오지도 못하고 눈물바람만 했을 언니..
친정 오는건 연중행사였으니.....
힘들게 사는 딸...제일 고생하고 큰 딸을 위해서
하나라도 더 보태주고 싶어도 차가 없어 가져가질 못하니
줄 수가 없어 애타하시던 울엄마..
둘이서 아주 날을 잡은것처럼 온 집안이 정신 없드니,
가는날 보니 짐이 한 차 가득이다..
저 짐의 무게만큼이나 언니의 서러움이 컸으리라 싶다.
올라가면서 한마디..
"매화 딸 때 내려올께요....."
'그래 언니, 와서 다 따가 나는 필요없으니까 언니 다 가져가'
내 몫까지 이제부터 언니 다 가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