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조카의 백일을 맞아 온 가족이 동서네 집에
모였습니다.
집안은 온통 떠들썩하여 아마 위 아래 집에서 무슨일
났나 했을 겁니다.
아이들은 비좁은 집을 피하여 간간히 놀이터를 오가고
집에 들어오면 베란다 한 구석을 차지하고 온갖 놀이를
다 하면서 별별 소리를 다 내고 놀더군요.
식구들이 모두 모이는 시간이면 으레 그렇지만
큰 며느리인 나는 자리에 앉아 있을 군번이 아닌지라
연신 부엌과 거실을 오가며 차려내고 치우고를 반복하였습니다.
마치 아이들이 모래성을 쌓았다 부수고 또 쌓고 하는 것처럼
며느리는 부지런히 만들고, 차리고, 또 씻고
가족들이 모인 하루를 위하여 그렇게 하루를 보내야 하는
자리에 있는 가 봅니다.
딸들은 방에 모여서 이런 저런 사는 이야기라도 나눌 수
있는데 부엌은 언제나 며느리들 차지입니다.
그래도 울 큰 시누이는 윗 사람 노릇을 기꺼히 마다하지
않으시고 오랜 살림 노하우 탓인지 재빠른 손놀림으로
눈깜짝할 사이 그 많은 그릇들을 제 자리로 착착 놓아주셨지요.
딸이면서도 며느리처럼 늘 친정에 오시면
팔걷어 부치고 적극적으로 도와주시는 우리 큰 형님은
참으로 존경스러워요.
그 놀라운 살림솜씨를 아직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나이지만
참으로 저리 살아야지 하며 내심 감탄을 하곤 합니다.
마음도 넓어 온 식구들이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늘 먼저
헤아려주시곤 하는 형님이 계셔서
맏며느리인 내게서 많은 짐을 나눠 들어 주시는 형님이
계셔서 참 많은 위안이 됩니다.
온 가족이 모이는 시간이면 어머니의 손은 또 얼마나 바쁘시기만
한지 마냥 덥다고 하시는 어머니의 마음속에는 어느새
집안 가득 메운 모든 가족들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맛있게 먹고, 그간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가는 길에는
어김없이 한 보따리씩 이집 저집 챙겨 주시기에 바쁜
우리 어머님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도 환하셨습니다.
부모님들과 함께 이렇게 온 가족이 모이는 시간들이
과연 얼마나 많이 남아있는 가
하는 생각을 해 보니 어른들이 그리도 흐믓해 하시는 게
이해가 됩니다.
방 하나를 다 차지하고 누워 있는 우리 아기 천사
조카들이 두명이나 있었습니다.
나랑 동갑 나기 시누이도 얼마전 아기를 낳았거든요.
한해에 아들 손주를 두명이나 보았다고
벌써부터 어머님은 동네분들 초대를 준비하시는 듯 했습니다.
나이로는 한 참 저아래인 하나 밖에 없는 우리 동서는
요즈음 많이 힘든 때입니다.
신랑이 대기업에 다니다 구조조정 여파로 요즘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였는데 아직은 별 진전이 없는 듯 하여
가족들 모두가 애를 태우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애써 내색하지 않고 가족 모두를 불러 이렇게
작은 조카의 백일을 겸해서 모일 수 있게 하는 걸 보니
안스러운 마음조차 일고 있었습니다.
오물거리는 작은 입과, 손 과 발.....
아기천사들의 그 모든 것이 참 새삼스럽고, 신기했습니다.
내가 언제 저런 아기를 키웠던가 싶게 너무 예쁘고 그랬습니다.
그 아이들이 자라고 어른이 되면
네가 형이니, 내가 형이니 하며 토닥이고 살고 있을
아이들의 미래가 그려져서
마냥 행복한 어른들이 거기 그렇게 모였습니다.
딸만 둘인 나에게 아들 하나만 더 낳으라고
오늘도 그 레퍼토리는 여전히 빠지질 않고 있었습니다.
낳기만 하면 우리 동서가 키워준다는 말까지 하며
모두들 서로의 처지를 염려하며
어제 하루만큼은 마치 모두가 한 집에 사는 이들처럼
북적 북적거리는 하루를 보냈습니다.
가족의 힘이란
아마 그런걸테지요.
자신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가장 솔직하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 놓아도
아무런 부담이 없는 관계.....
누구나 내일 처럼 진심어린 걱정을 해 줄 수 있다는 거
그런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또 다른 새로운 힘을 가져다 줄 수 있기에
오늘은 며느리로 사는 일이
마냥 힘들지마는 않습니다.
좀 많은 설겆이를 하는 하루면 어떤가요.
자신의 수고로움으로 가족들이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
있다면 기꺼이 그리해야겠지요.
아기 천사들의 건강과 행복을 빌어주는 날
뽀얀 백설기가 맛있는 날
새벽부터 만드신 어머님의 수수팥떡을 나눠 먹던 날
우리 가족의 하루는
넉넉한 행복이 넘치는 그런 하루였습니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와 집안 구석 구석을 닦고
욕실 두개를 반짝 반짝하게 되돌려 놓고
그러고도 한 참 동안이나 잠들 수 없었던 것은
아마도 지금 내가 이만큼 행복할 수 있게
가족들이 옆에서 음으로 양으로 도와준 것임을
다시한번 생각하느라 그랬을 테지요.
사랑하며 살고 싶습니다.
내게 주어진 그 모든 인연들을 ......
좀저 다정하게 대하며 그리 살고 싶습니다.
천년 만년 우리 앞에
펼쳐지는 그런 시간이 아니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까닭에.....
나누며 살고 싶습니다.
나누면 배가 되는 기쁨을 아는
나는 그런 며느리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