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이었습니다.
선배가 가보자고 하여 난 작은 호기심에 선뜻 따라나섰습니다.
시월의 마지막 토요일 늦가을의 찬비가 메말라
바스락대는 낙엽들 위에 후드득 떨어지던 날
우리는 신촌 역에서 기차를 타고 떠났습니다.
너무나 환상적인 만남이라고만 설명한 뒤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는 선배를 보면서
난 내심 나만의 멋진 상상의 그림을 그려대며 한껏 들떠 있었습니다.
멀리 차창 밖으로 보이는 시골풍경은 내 마음을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언제나 조신하고 겸손하였으며 늘 사려 깊은 언행은 학교에서나 교회에서 늘 귀감이 되었던 선배인지라 난 더욱 기대를 하면서 마냥 어린애처럼 즐거워했습니다.
우리는 한적하다못해 고적한 사찰 분위기를 내는 일산 역에 도착하였습니다.
빗방울은 서울을 떠날 때 보다 투명한 유리알이 되어
더욱 빠르게 뿌려지고 있었습니다.
기차는 단 두 명만을 내려놓은 채 다시 어디론가 분주하게 떠나갔습니다.
난 선배가 들고있는 조그만 가방이 평소 때와 달라
궁금하였지만 모르는 척 하였습니다.
한참을 걷다보니 저 멀리 조그마한 산밑에 허름한 건물이 보이자 이윽고 선배는 다 왔다고
말했습니다.
바로 홀트 아동복지 이었습니다.
선배는 틈나는 대로 이곳에 찾아와 장애자들을 돌본다는 것이었습니다.
몇몇 직원들을 제외하곤 모두 자원봉사자 들의 손길을
통해 이들은 일상적인 생활이 이뤄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선배는 가방을 열더니 가위 빗 등을 꺼내어 반가워하며
목에 매달리는 아이들의 머리를 다듬어주기 시작했습니다.
난 옆에서 코를 틀어막고 서있기만 했습니다. 심한 악취에 바로 뛰쳐나오고 싶었지만
묵묵하게 봉사하고 있는 선배를 봐서라도 참아야 했습니다.
머리손질을 마치자 한 명씩 머리도 감겨주며 목욕을 시켜주더군요.
어떤 여자는 나이가 30이 넘었는데도 몸은 15살도 안돼 보였고 손이 없어 발가락사이에
수저를 끼우고 밥을 먹었습니다.
말만 들어보았지 난생처음 목격한 장애자들의 살아가는 모습에서 교만과 불평 속에
점철되어진 내 삶을 다시 한번 뒤돌아 보게되었습니다.
선배는 나에게 그러고 서있지만 말고 이들에게 멋진 선물을 하라고 했습니다.
이들이 최고 좋아하는 선물은 음악을 듣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난 얼떨결에 풍금을 열고 건반을 누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 거동하기조차 힘겨운 몸들은 하나씩 이동하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다 내 곁으로 모여들었습니다.
발가벗겨진 채 부끄러움도 없이 엉덩이로 밀고 온 아이, 바닥에 뉘어 놓을 수 없어 휠체어
에 옮겨놓아진 중증장애아이를 서투르나마 밀고 온 장애아이, 배로 기어온 아이, 그들 모두가 하나같이 인간이 되기를 거부한 모습들처럼 느껴졌습니다.
너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중 누군가가 찬송가를 쳐달라고 하였습니다.
찬송가를 쳐주자 얼마나 좋아하던지 모두다 천사의 모습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들은 불평할 줄도 몰랐고 서로를 미워할 줄도 몰랐습니다. 상대의 모습이 이상하다고 흉도 볼 줄 몰랐습니다 .
서로에게 부족한 것을 채워주며 더불어 결코 길지 않을
삶을 소중하게 여기며 조용하게 살고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들이 바라는 작은 소망은 있었습니다. 우리가 자주 그들에게 찾아와 주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외로움에 젖어있는 그들의 모습은 날 너무도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난 그때 많은것을 깨달았습니다.
장애인은 그들이 아니고 외모만 멀쩡한 내가 아니었었나하고 말입니다.
난 그 가을에 만났던 소중한 인연들을 지금도 잊지 않고 살고있습니다.
늘 내가 힘들어 지치고 속이 상할 때 20여 년이 흘러간 지금에도 그들은 나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어떤 상황에서도 다 자기만의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