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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송화다식, 그리고 어머니


BY 느티나무 2003-05-08

나의 일터에는 정원이 있고 그 정원에는 잘 자란 소나무가
몇 그루 있다. 아마도 수 십년 전에 누군가 심었을 것이고,
지금은 한 그루의 멋진 거목으로 자랐다. 이제는 봄이면
노란 꽃을 피워서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하고 뜨거운 여름이면
그늘을 만들어 사람들이 쉬게 해준다.


며칠 전 아침에 정원을 둘러 보니 노란 송화 가루가 떨어져
있다. 청소를 하는 아이들에게 "너희들 이게 무엇인지 알아?"
하고 물으니 모른다고 대답을 한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 송화(松花)나 송화가루를 알리가 없겠지...


우리 나라에 나무의 종(種)도 많고, 나무의 수도 많이 있지만
아마도 소나무가 가장 많을 것이다. 그래서 소나무는 한국을
대표하는 나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한국인의
사랑을 많이 받아 왔고, 소나무에 관한 일화도 많이 있다.


가장 오래된 것으로는 솔거(率居)이야기가 있다. 신라의 화가
솔거가 황룡사 벽에 소나무 그림을 그렸더니 날아가는 새가
실제 소나무로 착각해 앉으려다가 벽에 부딪혀 땅에 떨어졌다
는 것이다. 솔거는 어려서부터 그림그리기를 좋아해서 땅에
연습을 해서 훌륭한 화가가 되었다고 한다.


또 하나 유명한 일화가 얽힌 소나무로는 법주사 정이품송이 있다.
1464년 조선조 세조가 속리산 법주사로 행차할 때 타고 있던 가
마가 이 소나무 아랫가지에 걸릴까 염려하여 “연(輦)걸린다”고
말하자 소나무는 스스로 가지를 번쩍 들어올려 어가(御駕)를 무
사히 통과하게 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세조는 이 소나무에
정2품(지금의 장관급)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몇 년 전에 보니 마치 우산을 펼쳐 놓은 듯한 품세가 의젓하고
늠름한 기품이 있었다. 수령이 600년이 넘었으니 오랜 세월을
비바람과 눈보라를 견디면서 아직도 푸른 빛을 발하고 있었다.
옛 사람들이 십장생(十長生)이라고 해서, 가장 오래 산다는 장
수물(長壽物) 열 가지에 소나무를 넣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고래로 많은 사람들이 소나무를 시로 칭송했고 그림으로 그려서
사랑했다.


고산 윤선도 님은 오우가(五友歌)에서 "솔아, 너는 어찌 눈서리
를 모르느냐?"고 노래했다. 세조의 왕위찬탈에 반대해서 죽임을
당했던 사육신(死六臣) 성삼문 님은 그의 시조에서 "죽어서 봉래
산 제일봉에 낙락장송(落落長松)이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때
에 독야청청(獨也靑靑)하리라"고 해서 선비로서의 기개와 불사이
군(不事二君)의 충성심을 표해서 많은 사람들의 귀감(龜鑑)이 되
고 있다.


우리가 의식을 행할 때 항상 부르는 애국가(愛國歌)에도 역시
소나무가 등장한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라고 하여 소나무의 꿋꿋함을
칭송하고 있다.


소나무는 옛 선비들이 즐겨 그렸던 나무 중에 하나였다. 가장
오래 되고, 잘 알려진 것은 역시 앞에서 말한 솔거의 노송도이다.
조선시대 유명한 소나무 그림으로는 풍속화가였던 단원 김홍도
님의 '송하취생도(松下吹笙圖)'와 산수화의 대가였던 겸재 정선
님의 '금강전도(金剛全圖)가 있다. 추사체로 유명한 완당 김정희
님의 '세한도(歲寒圖)는 선비의 인품을 송백(松栢)의 지조에 비
유해서 그린 그림으로 극도로 절제된 생략으로 표현해서 조선시대
대표적인 문인화로 알려져 있다. 서민들의 소박한 마음을 표현한
민화에도 소나무 아래에서 담배를 피는 호랑이 그림을 자주 볼
수가 있다.


현대의 화가들도 즐겨 소나무 그림을 그렸다. 그중에서도 허계,
홍소안 님들은 소나무만을 그려서 '소나무 작가'로 알려져 있다.


전에는 정원수나 가로수로 소나무를 많이 심은 것 같지 않은데
요즘에는 많이 심고 있다. 아침 출근 때마다 지나는 창경궁에는
벚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어 '벚꽃놀이'로 유명했다. 이는 일제의
잔재라고 하여 서서히 뽑아내고 지금은 소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다. 감사원으로 가는 길 좌우에는 잘 생긴 소나무를 심어서 관
리들의 부패를 다루는 관청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고 있다. 우리
나라 최고의 기업인 현대그룹 본사 건물 앞에는 소나무로 조경을
해서 잘 지은 건물과 어울려 한층 더 운치가 있다.


나는 시골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소나무는 친근하다. 매일
집 주위 산에서 보고, 땔감으로 땠고, 또 집 짓는데 재목으로
사용해서 함께 생활을 한 것이다.


봄에 송화가 노랗게 피면 어머니께서 잘라서 자리를 펴고 말렸
다. 화사한 봄볕에 며칠을 말려서 손으로 비비면 노란 송화가루
가 떨어진다. 이것을 모아서 제사나 명절 때 송화다식을 만드셨
다. 그 노란 색깔이며 향긋한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지금은 농
촌에서 일손이 부족해서 이런 음식이 전부 사라지고 있어 아쉬울
뿐이다.


추석 때는 솔잎을 따다가 시루에 깔고 송편을 찌는데 이용했다.
찌는 과정에서 송편끼리 달라 붙지 않아서 좋고, 송편에서 향긋
한 솔 냄새가 나서 입맛을 돋군다.


지금이야 시골에서도 기름보일러로 난방을 하고, 취사도 개스로
하지만 예전에는 산에서 나는 나무를 썼다. 소나무 역시 중요한
땔감이었다. 겨울에 산에 가서 솔잎을 긁어다 때면 타기도 잘
하고 화력도 좋았다. 또 솔방울도 줏어다 아궁이에 넣으면 마치
불붙은 구슬처럼 오래도록 탔다. 한 겨울에 땔감이 없으면 눈 속
을 헤치고 가서 소나무 가지를 잘라다 땠다. 그러면 처음에는 연
기만 나고 불이 잘 붙지 않다가 조금 지만 '툭툭' 소리를 내면서
잘 탔다.


소나무에는 송진이라는 나무진이 있다. 송진이 박힌 소나무나,
진이 엉킨 가지나 옹이를 관솔이라고 한다. 정월 대보름날에는
어린애들이 이 관솔을 태우면서 쥐불놀이를 한다. 당시에는 귀
한 깡통(캔)을 구해서 못이나 송곳으로 몸통에 구멍을 여러 개
낸다. 그리고 관솔을 넣고 불을 붙여서 돌리면 활활 타면서 멋진
불꽃놀이가 된다. 밤에 여러 명이 돌리는 것을 멀리서 보면 마치
불굴렁쇠가 하늘에서 돌아가는 것처럼 장관이다.


올해에는 유난히 봄비가 많이 온다. 그래서 소나무 꽃에 묻은
송화가루가 노랗게 떨어진다. 그렇지 않으면 바람에 날려 수정
이 이루어질텐데. 이 송화가루를 볼 때마다 다식을 만들기 위해
송화를 말리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은 하늘 나라에
계시지만 향긋한 송화가루의 냄새를 맡으시겠지...


아, 그리운 나의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