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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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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BY 손풍금 2003-05-03

며칠동안 계속 내린 봄비에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노동일을 하는사람은 날씨앞에서 대책없는데
오늘 일기예보에 또 오후부터 흐려지며 비가 내린다고 하니 오후에 물건을 싸느라 난리통이 되지나 않을런지 모르겠다.
오지 않는 손님을 무작정 기다리고 앉아있으니 더 쉬이 배가 고프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자리로 오니 낯익은 아저씨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하늘을 향해 주먹다짐을 하고 소리소리 지른다.

'우리같은 사람 뭐먹고 살라고 하늘이 뚫려나 자꾸만 비가 오고 난리여,
먹고 살기도 급해 죽것는디 사스 는 또 왜 난리여,
이놈의 세상 갈수록 왜그리 살기가 힘들고 싫어지는겨..'하고 목청 높히며 힘주지만 누구도 그에 응대하지는 않는다.
말없이 바라볼뿐,
아저씨가 왜 술이 취해 그렇게 화가 났는지 주변에서 장사하는 우리들은 모두 알고있다.
먼저 장날에 처음 떠들어온 아저씨는 멸치와 각종 건어물을 펼 자리잡느냐 무진애를 쓰다 그날 마침 나오지 않은 장사꾼자리에 대신 들어가 장사했는데
오늘은 자신의 점포앞에서는 노점을 하지 말라고 주인이 나와서 그러니 자리를 잡지 못하여 하루를 공치게 되었다.

장터를 떠도는 장돌뱅이치고 초짜시절 누구나 몇번씩은 그런 상황을 겪어온 터라 그 마음이 어떤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장사못하고 빈손으로 집에 들어가기 민망하고 돈달라 손벌리는 아이생각에 결국 쓴소주에 마음담구며 위안삼은것을 그 누가 모르겠냐마는 모두들 그 아저씨의 주정에 걸려 들까봐 고개를 돌린다.

나도 다가오는 걸음걸이를 보고 더 고개숙이고 다른짓을 하고 있었지만 사실 좀전까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다니는 아저씨에게 더 마음이 쓰여 책속에 있는 글자는 공중에서 떠다니고 있었다.
보지는 않았지만 내앞에서 발걸음이 멎은걸 느낌으로 알았다.

'아줌마. 아줌마, 그렇게 하고 그렇게 고개 쳐박고 앉아있으면 장사가 되요? 안되지요? 소리를 막 지르고 그래야 장사가 되지, 물건 다 집어가도 모르겠네.'

말대답을 하지 않으면 그냥 돌아가겠지 했는데 아저씨는 내 눈높이에 맞춰 자리에 앉더니
'내말이 말같지가 않나? 대답도 안하네, 아줌마 안들려요?'한다.

'들리는데요. 아저씨
속상하다고 술드시면 어떻게 해요. 이왕 장사 나오셨으면 저 맨 끝자리에서라도 하셔야지요.
누가 아저씨 오셔서 장사하라고 자리 만들어 놓고 기다려 주지는 않아요. 자주 오셔서 빈자리 찾아 하시다보면 아저씨 자리 만들수 있을거예요.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소리 지르지 마시고 차에가서 한숨 주무시고 술깨면 집에 돌아가셔요.'
하고 나는 툭툭 털고 자리에서 일어나 농협안으로 들어갔다.

농협 창가에서 바라보니 멸치 아저씨,
아직도 내자리에 앞에 앉아 조는건지 고개가 땅으로 떨어질듯 흔들거리더니 일어선다.
아무도 상대해주는 이 없자 비틀거리며 돌아가는 아저씨의 뒷모습이 왜 저리도 외롭고 작아보이는걸까.

오늘은 장사가 안된다.
은행에 들어간김에 만원권을 천원짜리 잔돈으로 바꾸어 가지고 나오니 주머니가 금새 두둑해져 많이 번듯하다.
자판기 커피한잔 마시면서 다음장엔 아저씨 자리 잡으셨음 하는 마음도 들고 이 커피 마시고 나면 내자리에 단골손님 두서너분만 찾아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램을 갖았다.

*********
집에 돌아가는길이 이렇게 좋은것은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하여 기다려 주고 쉴곳이 있기 때문일것인가..
바람막아주고 비막아주는 집만 있는것으로도 나는 행복해 좋아 죽을 지경이다.
멀리 집이 보인다.
막 뛰어간다. 하마트면 넘어질뻔 했다.(내발에 걸려서.....)
쉰 김치 달달 볶아서 구운김 한장 깔고 또르르 말았다.
금새 다섯줄이 되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 자르기도 전에 한줄씩 집어들고 만화책에 코박고 앉아있다.

'공부는 어느 천년에 할까..엄마처럼 가난하게 살고 싶은가베.
지지리 고생하면서...'

들은척도 안하고 킥킥 거리며 ' 또 말아줘. 맛있다..'한다.

약속시간 삼십분 전. 급한게 옷을 갈아입고 또다시 뛰기 시작한다.
봄바람은 때론 무아의 정신속에서도 앞서서 휘청거리다 정신을 놓게한다. (꽃 탓만은 아닐게다)

장사익 공연시작 1분을 남겨놓고 학교 정문앞에 도착 ,
이번엔 기다리던 정원이가 내모습을 발견하고는 손한번 흔들며 뛰기시작, 여기저기서 뛰는 발자욱소리, (아..나도 살아있구나.)


정심화홀의 문을 여는순간,

하얀꽃 찔레꽃
순박한 찔레꽃
별처럼 슬픈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아!
찔레꽃처럼 울었지
찔레꽃처럼 노래했지
찔레꽃처럼 춤 췄지
찌레꽃처럼 사랑했지
찔레꽃처럼 살았지
당신은 찔레꽃.
.
.
.
이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

(오늘밤 마지막잠을 자게 될 옥탑방에 돌아와 이삿짐을 싸면서 찔레꽃처럼 하얗게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