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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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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길 (4) *행복한 아침*


BY 쟈스민 2001-08-31

언제나 나의 두발이 되어준 나의 고마운 친구가
어제는 몸살이 났나 봅니다.

자동차 병원으로 실려 갔습니다.

최근에 이웃집으로 이사를 온 직장 선배의 차를 얻어
타기 위해 아침부터 실례를 무릅쓰고 전화를 했습니다.

선배의 상냥한 목소리가 화창한 날씨만큼이나
다정합니다.

선배의 아파트 후문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정하고
나는 평소보다 이른 출근길에 나섰습니다.

늘 내 친구와 함께 빠른 속도로 달려 가곤 하던
아마도 시속 60킬로 정도로 가던 그 아파트 뒷길을

오늘은 느긋하게 걸어서 갑니다.
나는 어느새 걸어 다니는 FM이 되어 콧노래를 흥얼거립니다.

그곳엔 문득 나의 시선을 붙드는 이가 있었습니다.
그곳은 아파트를 둘러싸고 길게 드리워진 화단이었습니다.

아름드리 나무는 아니지만 심은지 얼마 안된 연초록 나무들과
그 아래에서 도란 도란 살고 있는 강아지 풀과 잘고 흰꽃,
보라빛 들꽃들이 삐죽이 고개를 내밀고 반가운 인사를
건넸습니다.

아마도 그곳은 걸어서 다니는 인적이 드문 곳인데
밀리는 도로를 피하여 다니곤 하는 차량들만의 지름길인데

보아주는 이가 많지 않아도 그들은 절로 소박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이름은 잘 알지 못합니다.
들꽃이라는 것 밖에는....

하지만 참 고왔습니다.

치장하지 않은 시골 처녀의 수수함처럼
있는 그대로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흐믓하고 마냥 정겨웠습니다.

그곳에선 어제와는 사뭇 다른 바람을
느껴볼수가 있었습니다.

도심에 사는 우리들은
하루에 몇번 하늘을 볼까요?

투명한 코발트 빛 하늘에 햐얀 양털을
군데 군데 흩뿌려 놓은 듯한
이른 가을의 하늘을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 몸이 뻐근할 때마다
전 하루에도 몇번씩 들여다 보곤 합니다.

그럴때마다 하늘은 자꾸 높아만 갑니다.

아파트와 빌딩과, 오피스텔들의 숲 사이로
언뜻 언뜻 보이는 초록 나무 가지들이
아쉬운 여름을 접고 서 있습니다.

콘크리트 건물 숲에서 하루의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커피 한잔과 함께 넓은 창가에 머무는 시간이

멀리 하늘을 바라다 보는 시간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가을은 그런 계절인가 봐요.
그리움이 사무쳐서 마음이 어디론가 허허로이 떠다니는
구름이 되고 마는.....

비 개인 오후에나 볼 수 있었던
저기 먼곳 산 허리의 자태 마저도
오늘은 선명하게만 보입니다.

가을을 기다리는 눈으로 바라보니
그 모든 것들이 여유롭게 다가옵니다.

닮고 싶은 것들이 너무도 많아서입니다.

하늘, 바람, 나무들, 이름모를 들풀들.....

가만이 있을 땐 그저 삭막하기만 한 도시인 것 같아도
잘 보면 이렇듯 우리를 둘러싼 세상 모든 것들이
아름답기만 합니다.

맑은 가을 하늘가에 두둥실 더 있는 새털 같기도 한
구름 떼들이 내 마음에 남아 있는 모든 앙금들을
훌훌 털어내 줄 것만 같은

그런 아침을 맞을 수 있는
오늘의 나는
그래도 참 행복한 사람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