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로 근처인 충신동에서 나고 자랐다 ..
대학로는 지금도 유명하지만
내가 자랄 때는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다니는
이른바 서울대가 있던 곳이다
서울 법대를 기점으로 건너편에는 미대
그리고 길을 따라 올라가면 문리대
그 ..대단한 학교가 늘 우리들에게는 놀이터였다
봄이면 대바구니를 들고
쑥을 뜯는다고
꽃을 딴다고 친구들과 삼삼오오 짝을 지어
법대 담을 넘었다
담은 미술의 구성의 한부분을 잘라 놓은 듯
굵은 쇠줄의 네모를 연상하는 수준의
낮은 담은 나같은 겁많은 사람도 넘기 쉬웠으니 ..^^
교문 입구를 기점으로 넓은? 개천이 흐르고
물도 별반 없는 그곳에 꼬질꼬질한 오리가 몇마리 놀고 있었다
어떤때는 우리도 그 오리를 ?아 그 개천 위로 따라 걷기도 하는
아이러니를 벌이고
어느 봄날
우리는 쑥바구니를 들고
담 귀퉁이에서 놀고 있는데
어떤 대머리 아저씨가 나타났다
무서운? 수위아저씨인줄알고
"에고 이제 영낙 없이 ?겨 났구나 .."
움츠리고 고개를 숙이는 우리들에게
다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뭘 하고 있었나 어여쁜 아가씨들 ~~"
고개를 들자
그는 밝은 미소를 띄고 우리를 조심스레 부르고 있었다
그는
나와 친구둘을 데리고
연구소로 안내했다
(서울대 부설 연구소에서 뭔가를 연구하시는 연구원이셨다
아직 장가도 들지 않은 말그대로 대머리?총각이셨다 ㅎㅎ)
어린이를 무척 사랑한다는 그는
녹음기를 켰다
지금이야 녹음기가 그리 신기할 바 아니지만
지금 부터 35년전인 그때는 얼마나 신기하고 대단한 물건이었던가
방금 내가 말하고 부른 노래가 저장되어 되울려 나온다는
그 신기함과 놀라움 .
그 기계에 매료되어 놀라서 웃고 다시 더 떠들고
그는 잠시 우리를 보면 무료함을 달래고
우리는 끝도 없이 웃어대고 ...
하 하 까르르 우히히히 ..
이제는 수위 아저씨의 눈을 피해 담을 넘지 않아도 되었고
우리는 그 부설 연구소엘 시간이 날때마다 찾아서
그 아저씨와 놀아주었다 ..
지난주에 우리가 녹음 해 두었던 노래와 목소리를 다시들으며
....
그 개천 다리위에서 사진을 찍고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아저씨는
우리에게 '알라딘의 마술램프'라는 재미있는 동화책을 한편 사주시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셨다
그런데
...그 유수한 세월은 말없이 흐르고
대학 수업 시간에 발효공학 시간이었다
그 교수님이 소개되는데
바로 그 서울대 부설 연구소에서
강의를 하러 오신 분이라는데
키가 작고 고집스럽게 생긴 여자교수님이셨다
기억력이 좋은 나는
혹시 하고
이준 연구원 아저씨의 존함을 대고
그가 지금은 건국대에서 강의를 맡고 계시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른 것은 생각과 동시에 너무 빨리 행동으로 옮기는 내가
그때에도 ..
머뭇 머뭇 한번 찾아가 뵐까 ..하는..생각만을 머릿 속에 담고
나는 학교를 졸업했다 ..
그리고 이렇게 잊혀졌다 생각나는 한사람이 되었다 ..
그는 내가 대학을 다니던 그 시절 결혼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렇다면 ..ㅎㅎㅎ
오늘은 주책스럽게 그때의 그 아저씨가 생각이 난다
얼마나 늙으셨을까??
벌써 나도 같이 늙어가는 나이가 되었는데도 ...
추억은 항상 그 시점에 머물고 있으니 ..
그때 나는 열살이었고 그는 아마 서른 살이 넘지 않았을까 ???
바로 그 아저씨를 처음 만난 그날이 어린이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