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 창가 앞 댓돌 위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소란스럽다. 시인이 아니라서 그런지.. 그 소리를 정서적으로 받아 들리지 못하는 나로 썬 새벽잠을 설치고 무거운 눈동자로 수중안개처럼 휩싸인 수평선을 바라본다. 어제도 오늘도 하루가 멀다 하고 하염없이 내리는 봄비. 올 4월은 웬 비가 시도 때도 없이 내리니 하느님께서 우산장수 사위를 맞이했나 싶다. 그렇더라도 그렇지.. 비 땜에 꽁치는 민생들도 좀 생각 해주시지 않고.. 이기주의적인 하느님이 이럴 때는 야속하기만 하다. 날씨 탓인가.. 밤새 휴식을 취했으니 깨운한 아침을 맞이해야 하는데 온 육신이 나른하고 지끈지끈하다. 따끈따끈한 온탕에 몸을 푸는 것이 상수다 싶기에 목욕 보따리를 챙겨서 아직도 어둠이 덜 걷힌 도료를 달린다. 늘 다니는 4층 건물의 목욕탕. 여탕은 2층. 옆 사람들은 승강기를 이용하지만 또박또박 한 계단씩 걸어서 올라간다. 예전에 실수로 3층 남탕에 침입한 죄가 있어서 랑.. 쏟아지는 비 땜인가.. 욕탕안은 몇몇 여체들뿐 썰렁하다. 사우나실에서 냉커피 통 껴안고 온갖 소문을 물고 다니는 별난 아줌씨들도 오늘은 웬일인지 결근이다. 옆자리 뚱보아주머니 마무리 샤워하고 나가는 그 자리에 500ml 우유 한 통 남겨 놓네. '아주머니 우유 통 그냥 두고 가네요' 그 아주머니 뒤로 돌아보면서 가타부타 말 한마디 없이 이상야릇한 웃음만 흘리고 종종걸음으로 휘릴릭~ 자기 것이 아닌가.. 아니야. 이른 새벽인데 다른 사람이 벌써 다녀 갈리 없고.. 행여.. 옷 챙겨 입고 가지로 오겠지 하고 한 켠으로 밀어 놓았다. 안개사우나탕. 녹차 탕. 열탕. 냉탕. 3000원 투자해서 랑 아깝지 않고 가장 기분 좋은 일.. 아~ 누가 목욕이란 일케 좋은 아이디어를 생산했을까... 그 사람이 정말 존경스럽다. 이탕 저탕 번갈아 드나들면 어느새 시간은 훌 딱. 3000원 목욕값 본전 빼고 사방팔방 돌아보니 민생고 해결 할 시간이라서 그런지... 몇 있던 나신들도 조급한 걸음으로 빠져 나가고 나 홀로 크나 큰 욕탕을 차지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독탕 같은... 하늘로 용천 하는 기분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한 켠의 밀 처 논 우유가 아직도 말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그냥 있네. 주인을 찾지 못한 체.. 방금 사우나탕 나와 갈증으로 목이 칼칼한데.. 임자 없는 저 걸 먹어 말 어? 우 쉿~ 정말 갈등 생긴다. 아서라.. 나의 아버지께서 살아생전 하신 말씀! '내 것이 아니면 절대 손대지 말라'고 하셨거늘.. 참자. 참아야지.. (참고=이 목욕탕 우유와 음료수 파는 아지매는 9시 넘어서 나온다) 그 유혹을 뿌리치는 것도 잠시.. 순간적으로 잔머리 굴린다. 지금 이 욕탕안에는 아무도 없고 임자없는 저 우유를 슬쩍 한들..으흐흐... 그 누가가 보지 않을뿐더러 증인도 없지 않는가. 뚜껑을 열려고 하는 순간.. 젊은 사람들 수퍼에서 요리조리 체크하더라 시퍼.. 날짜를 확인했지 럴.. 유통기한 4. 13 까지. 라고 박혀 있네. 오늘이 며칠이더라.. 날만 세면 흐르는 세월이니 알쏭달쏭하고.. 손가락을 짚으면서 가만히 샘을 해보니 엊그제가 강구 장날 4월23일. 하루가 더 지났으니 그라면 오늘은 4월 25일. 옴마야.. 갈증난다고 그냥 마셔 버렸으면 큰일 날뻔 했구먼. 유통기한이 지난 것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참이나... 이 뇨자.. 서민밥통을 가진 덕으로 하루 이틀 지난 우유 먹어도 별 탈 없지만 그래도 유통기한 12일 지난 우유는 안 되지라.. 둘도 아니고 하나뿐인 생명 줄인데.. 무모한 장난질은 용서 못하지. 그럼 이 걸 어떡하지.. 그냥 두고 나오기란 아쉽고.. C C C....또 갈등 생긴다. 그래 맞다. 어차피 버려야 할 우유로 우아하게 목욕을 하는 거다. 이 뇨자라고.. 세기에 유명한 클레오파트라가 되지 마라는 법 없지 랑. 그 도 공짜가 아닌가. 강부자비젼인 내 육신. 뽀얀 우유를 온 몸에 덮으시다니.. 기분 묘하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다 있는가 시퍼서 눈물이 찔끔 나려고 한다. 정말 이런 호강을 치루어두 되는지.. 안 하는 짓 하면 죽는다고 하던데.. 은근 슬쩍 걱정이 앞선다. 이 뇨자. 이래도 괜찮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