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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와서 좋은 날


BY 용숙 2003-04-25



봄비가 너무 자주 온다.
며칠 상간으로 내려대는 비로 어린 싹들이 추위를 탈까 걱정도 된다.
가끔씩 내려 주면 더 좋기도 하련만 어쩐 일로 헤프게도 내려 싼다.

그러한 염려 속에서도 고요한 아침 사릇사릇 비가 내리니
어찌된 일인지 내 마음은 한없이 잡다한 사색으로 빠져들어 이 아침에 꿈을 꾸고 있는 듯도 하다.
맑은 날이 좋기도 하지만은 비 오는 날이 더 좋을 때도 있어 오늘이 그 날이다.
자연히 그리 될 수밖에 없는지는 모르겠으나 비가 오니 맑은 날 보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정신이 한군데로 모아지며 참으로 호젓하고 아늑하다.

책을 보아도 좋고, 그냥 가만히 있어도 마음이 한없이 좋은 날이다.
비는 금시 그칠 것 같지 않다.

집 뒤 가게 출입문 소리가 ‘끼긱’ 하며 사람 드나드는 소리로 고요한 정적을 깨우지만 그다지 싫지는 않다.
집 옆 도랑은 오늘은 왠 일로 어느 깊은 산 폭포수처럼 시끄럽게 물소리를 내며 바삐 흘러가고 있다.
한없이 내리는 비에, 물안개는 앞산을 다 뒤덮었건만 온 몸이 비에 젖었을 것만 같은 이름 모를 새소리는 맑기만 하다.

비가 와서 좋고, 고장난 길 건너 가게집 문소리도 좋고
오늘 따라 소란스러운 도랑물 소리도 좋고
비가와도‘찍찍’대는 새소리도 좋고

물안개가 온 마을을 뒤덮어서 더욱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