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흑백 어린 추억속엔 마을 아이들이 참 많았다.
한 여름날밤에 동네 아이들 저녁을 먹고나서는
이집 저집에서 언니 오빠따라 어린 꼬마들 모여들면
동네 큰언니가 선생님 놀이를 하며 놀던 추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그중 늘 나와 옹기종기 붙어놀던 해수와 진수..
해수와 진수의 엄마는 우리엄마와도 친하게 지내는 이웃친구였고
진수라는 아이는 우리집 바로옆에 가까히에 살고 있었지만
해수네 집은 옆골목을 좀 걸어들어가야만 했었다.
둥근얼굴에 빡빡머리해수보다는 좀 갸름한 얼굴에 앞머리
반듯히 자른 진수가 일곱살나이인 이 어린눈에도 더 잘생겨보였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나의 기억에는
잘생긴 진수의 기억보다는 해수의 기억이 참 많다.
우리 부모님은 나이어린 큰딸네미를 생일도 늦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극성으로 7살나이인 나를 국민학교에 성급히 보냈다.
그렇게 어린나이에 학교가는길은 늘 호기심천국이었다.
한옆에는 산이 있었고 그한옆에는 논길이었던 그런 철길이
아마 지름길이었던지 늘 나와함께 다른아이들도 그 기찻길을
걸어서 학교로 집으로 그렇게 걸어다녔다..
난 그길을 진수보다는 같은반이었던 해수와 늘 함께 다녔었다.
기찻길을 가다가 멀리서 기차경적소리가 들려오면
나와 해수는 기찻길아래로 재빠르게 논길가로 뛰어 내려간다.
기찻길 바로아래 논둑의 폭패인곳에까지 들어가 숨어서
둘이 머리를 맞대고 한참을 숨어 있다가 기차가 지나가고
기차꼬리가 아주 안보일때까지 우린 그렇게 오랫동안
숨어있다가 다시 올라오곤 했다..
기차가 이렇게 지나갈때 기차앞에서 빨간 깃발흔드는 아저씨한테
들키면 잡혀가서 밥도 못먹고 돌 들어나르는 힘든일 하는곳으로
끌려간다는 어른들의 말을 우린 철썩같이 믿고 기차경적소리가
멀리서 들리기만 해도 마치 동화속에 나오는 늑대인양 그렇게
안보이는곳까지 깊이 숨어 있었던것이다.
기억력이 그리 좋지않은 내가 지금까지도
그기억이 아직도 생생한걸보니 아마도 그이야기가
어린나이에도 몹시 두렵게 느꼈었나보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차길로 다니는 어린아이들이
걱정스러워 어른들이 꾸며낸 이야기라는걸...
난 그곳을 떠나 서울로 이사 갈때까지만해도 모른채
세월이 한참이 흘러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렇게 기차가 지나가고 소리마져 사라질때까지 우린
숨소리 죽이고 있다가 슬며시 일어나 안도의 한숨을 쉬곤했다.
그리곤 금새 무서운 기차는 어느새 잊고
우리는 숨어있었던 논둑에서 이름모를 시큼한 풀잎한잎 뜯어먹고는
시큼한 맛에 눈썹 찡그린 인상 서로 마주보며 낄낄데고 웃다가,
풀피리도 만들어 조만한 입술 풀잎에 대고 어렵게 바람을 내어
한심한 피리소리가 픽하고 새어나오면 우린 또 소리내어 웃던 그길은
어린 우리들에게는 놀이터보다 더 재밌는 기찻길이었다.
어느날 학교에서 청소분단에게만 나누워주는 누렇고 둥근빵..
그렇게 학교에서 빵을 받고 집으로 가는길은 신나는 날이었다.
한동네인 그친구는 가끔 싸우는날 빼고는 늘 함께 다녔었고
그렇게 빵을 받은날에는 우린 집으로 오는 기찻길에서
서로 빵을 나누어 먹으며 걸어왔고 그런 해수는
가끔 기분이 좋으면 나의 가방도 들어주었다.
그런해수와 진수와의 어린시절을 보내고 2학년되던해에
우리집은 서울로 이사를 가면서 난 처음으로 헤어짐이라는걸 알게되었다.
서로 너무 멀리있으면
보고 싶어도 볼수도 없고
만나고 싶어도 만날수도 없다는걸..
그게 바로 헤어짐이라는것을..
아주 오래전의 일이라 기억이 많이 끊겨서
못내 아쉬운 나의 어린시절의 추억들..
매끄럽게 기억하지못함이 못내 아쉬워
가끔 엄마에게 오빠에게 그시절그때를 이야기 해보지만
그시절 그친구는 아쉽게도 내기억속에만 있었다.
어느해인가 세월이 많이흘러서 엄마한테서
해수엄마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적이 있었다.
그때 난 사춘기 열병에 빠져 무심코 흘려듣던 그아이의 이름이
왜 지금에와서 문득 궁금해 지는것일까..
그래도 난 가끔 이렇게 궁금함을 즐긴다.
이렇게 추억의 필름을 빨리감기해서 칼라로 인터넷으로
빛보다 빠른시대로 이만큼 냉큼 달려와서 살고는 있지만,
그래도 가끔은 지금처럼,
추억의 필름 되감기해서 흑백시절의 아주멀고도 느린
추억들을 되돌아 볼수가 있어서 말이다..
아직도 그곳엔..
산길 뛰어다니던,
기찻길 걸어다니던
까까머리 개구장이녀석 해수가 있고
새침떼기 어린 계집아이인 내가 그곳에 있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