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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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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 아이는 무얼 하고 있을까


BY 베티 2000-09-19






누구나 그런 추억이 있을 것이다.
기억속에 지워지지 않는 친구의 모습같은 것 말이다.

초등학교에서 처음 본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많이 달랐다.
시골아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하얀 피부,남자 아이들이 갖고 있는 억센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연약함 그리고 여자 아이들보다 더 고운 피부등은 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 아이의 집은 탱자나무가 빙 둘러친 울타리 안에 있어 호기심을 더 자극 했다.
아버지가 없고 조부모와 엄마와 산다는 것,그리고 그 애의 어머니가 그 아이에게 쏟는 정성이 보통이상이었다는 것들 외엔 특별한 사정은 알 수 없었다.

그 아이는 6살에 학교에 들어왔으나 반장까지 했다.
그 애의 엄마는 요즘 말로 그 시골에서도 치맛바람이 센 편이어서 겨울 방학이면 그 다음 학년의 책을 미리 학교에서 구해다 공부를 시켰다.
그래서인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는 반에서 항상 1등을 하였다.
그래서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나는 그 아이가 전학을 갈 때까지 그 아이의 뒤만 ?고 있었다.

어느 날 그 아이가 24개짜리 크레파스를 가지고 학교에 왔다.
그 당시 대부분의 아이들은 12개짜리 크레파스를 갖는 것도 대단한 호사였는데 그래서 그 크레파스는 우리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도 남았다.
'2단 짜리 왕자 크레파스',나도 몹시 궁금하여 그 애가 없는 사이 서랍에 있는 크레파스를 꺼내어 보았다.
마침 그 걸 본 그 아이는 크레파스를 휴지통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만큼 그 아이는 풍요롭고 가족의 큰 정성 속에 살고 있었다.
그 시절의 농촌 생활이라면 많은 형제 속에, 부모님들은 들일로 바쁘셔서 공부도 스스로 알아서 해야 했고 학용품도 물려 쓰는 일이 다반사 였다.
그러나 그 아이는 아버지가 안 계시고 외동아들이어서 그런 환경에서 자랄 수 있었던 것이다.
어린 마음에 그게 무척 부러웠던 기억이 난다.

내 마음을 잡아 끌던 그 아이는 2학년 때 서울로 전학을 갔다.
1학년으로 내려서 갔다고 했다.
종종 나는 그 아이 소식이 궁금해서 그 아이의 친척에게 묻곤 했는데 다시는 만나지는 못했다.
다만 고학년이 되어서는 성적이 떨어졌다는 것과 커서는 서울에 있는 어느 대학에 갔다는 것외엔 그 후로는 어떠한 소식도 알지 못한다.

왜 그렇게 그 아이가 궁금할까!
그건 아마 내 마음이 가장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지금 만나면 그의 변한 모습에 실망을 할 지도 모를 일이니 그저 추억속에 담아두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게 나의 첫사랑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