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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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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 만만' 고무줄


BY 남풍 2003-04-16

"엄마, 나도 자신 만만 고무줄 사 주세요."
웅변대회에 나간다고 얼굴 붉어지며 목청 높이던 딸이 말했다.

올해 4학년인 딸아이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유난히 수줍음이 많은 아이였다.
멀리서 아는 사람이 걸어 오는 모습이 보이면,
'인사할까? 그냥 갈까?'하며 망설이다,
뱃 속 가득 힘을 주고 얼굴이 붉어져야 "안녕하세요?"하는
작은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던 아이가 언제부턴가 아주 조금씩 씩씩해지더니,
웅변대회까지 도전하는 모습에 대단하다고 입을 모아 칭찬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긴장이 되긴 하나보다.

저녁을 먹고 아이들과 함께 선물코너에 갔다.
"여??다!"
주렁주렁 진열된 머리 고무줄들 속에서 꽃이 달린
'자신만만 고무줄'을 아이가 찾아내어 소리쳤다.

신이 나서 만지작 거리며 아이는
"그런데 엄마, 이게 왜 자신 만만 고무줄이야?"하고 묻는다.
"너무 자신있게 생겼잖아. 여기에 다시 주문을 걸어야지.
이 고무줄로 머리를 묶으면 모든 일에 자신이 생긴다."

"그런데, 엄마.
만약에 내가 이 고무줄이 자신만만 고무줄이라는 걸 몰랐다면,
그냥 예쁘다고만 생각했을 것 같은데..."

예리한 딸은
"혹시, 자신이 생길거라고 생각하니까 자신 만만해 지는 거 아냐?"
하고 묻는다.

'왜 아니겠니?
마음이란 자석과 같아서 자신이 믿고 있는 걸 끌어 당기는 것이지.할 수 있다 믿으면 할수 있고,
행복해지려 하면 행복해질 수 있단다.'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더 절실히 느끼는 마음의 힘,
내가 나를 향해 거는 주문,
자기를 향한 암시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
세상이 보여주는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달라짐을
4학년짜리에게 다 설명해 줄 순 없고, 다만,
"마음은 요술장이지."하고만 말했다.

한달 쯤 전인가, 옆집에 사는 5학년짜리 아이가
어린이회부회장에 출마했다가 떨어진 일이 있다.
우리 아이와 비슷한 성격이라 전교생 앞에서 소견 발표를 했다는
사실이 대견해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는게 중요하다며,
칭찬을 해 주었다.
그러나, 막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한 아이가 낙선의 충격에
혹 주눅이라도 들까봐 파란 꽃이 달린 머리 고무줄을 사다주며,

"이 고무줄은 자신만만 고무줄이야.
이걸 묶고 또 새로운 일에
도전해봐라."고 했다.

그리고 한달여를 두 갈래 머리를 그 고무줄로 묶고 학교를 오가더니,
오늘 아침에
"이모, 나 가족신문 만들기 금상 받았어요."하며 자랑을 했다.

칭찬하며 내 딸과 나란히 걸어 학교로 향하는 걸 볼 때 까지도
나는 그 고무줄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알지 못했다.

낮에 그 엄마가 놀러와서 자기 딸이 그 고무줄 때문에 자신이 생겼다며, 내게 고맙다고 꼭 전해 달라고 했단다.

'자신 만만 고무줄'이라는 한마디에 자신이 생겨 버린 옆집 아이와
용기가 필요해 똑같은 머리 고무줄을 사는 딸.

누군가 아이들은 스폰지라 했다.
스폰지는 맑은 물에 떨어지든, 구정물에 떨어지든 물을 빨아들인다.

이 천진한 아이들에게 어른이 해줄 수 있는 일이,
구정물 통을 치우고 맑은 물을 담아 주는 것 외에
다른 무엇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