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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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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아 산아~~~


BY 동해바다 2003-04-14

산아 산아~~~

30년만에 밟아 본 속리산...

지금의 차분함이 무색할 정도로  멋도 모르고 날뛰던 새침데기 여중시절..
정이품송이 축 늘어진 그 밑을 아이들과 손잡고 쭈욱 걸어갔던 어렴풋한 30년전
기억속 부스러기들이 휘리릭 스쳐 지나간다.

법주사 입구까지 국립공원답게 꾸며진 공원과 산책로, 그리고 낙낙장송과 더불어 
목을 뒤로 젖히고 바라 보았던 키 큰 나무들 졸참나무, 박달나무, 전나무 등등..
생소한 이름을 단 명찰을 두르고 많은 행락객들과 산사람들을 바라보며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30년 전의 나는...
지금의 나를 생각이나 했을까...
사색, 문학소녀, 고독 그런 것들과는 거리가 먼 방방 뛰어 놀기만 하던 내가 어찌 미래의
나를 생각이나 하였겠나 싶다.

30년이라는 세월이 나를 이렇게 중년의 나이로 만들어 다시금 속리산 속으로 불러들인다.
山名처럼 속세를 잠시 떠나 모든 것을 잊고 하나가 되기 위해 큰 숨을 들이쉬며 산행을
시작했다.
 
산행을 하면서 맛보는 또 다른 즐거움은 이름모를 들꽃들 나무 그리고 날짐승들을
보면서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 볼수 있는 여유로움과 산지식을 얻을수 있다는 점이다.
다행히 식물에 대해서 많이 알고 계시는 산악인이 계셔 몰랐던 식물명과 그 외 부수적인
이야기 내지는 역사 등을 들으면서 걷는 기쁨 또한 여늬 산행때보다 즐거움이 배로
되는 시간이었다.

지난주 바람쐬러 갔다가 막 돋아나는 새순들과 함께 어울어져 초롱초롱 매달려 있는 
연보랏빛 들꽃이 내 눈에 쏙 들어와 매우 궁금해 하던 차였다.
공원입구에서 법주사까지 들어가는 길목 옆으로 아름드리 서 있는 나무들 아래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고 있었던 이름도 특이한 현호색(윗사진)..
수줍어 고개들을 숙이고 다소곳이 자리를 잡고 있던 보랏빛 꽃이 새악시 볼마냥 불그렇지는 
않았지만 올망졸망 모여 있는 것이 참 예뻐 보였다.

문장대까지 이어지는 가파른 돌계단에 힘겨워 하면서 운동부족에서 오는 어지럼증..
말을 시키면 말조차 하는것이 버거워 간단하게 대답을 하고는 묵묵히 올라갔다.
어떤 분은 공원에 산책나온 것으로 생각하라고 했지만 한달에 딱 한번씩 산에 오르는
내게는 참으로 힘든 산이었다.
산아 산아~~~

힘들었던 나와는 별도로 남편은 몇발짝 앞에 가더니 내 눈 앞에 보이지 않고 
간간히 다른 일행만이 힘들지 않냐며 염려의 말을 건내곤 했다.
오히려 힘들었지만 잠시 쉬면서 숨한번 돌리고 바라보는 하늘과 
조릿대(일명 산죽:가운데사진)가 모여있는 곳에서 불어 들려오는 바람소리에 
아픈 다리와 거친 호흡을 다잡을 수 있었다.

그리 높은 산은 아니었던 속리산..
2시간 10분간의 오름산행은 자연의 소리와 눈의 즐거움을 맛보면서 끝을 맺고
예전 자주갔던 도봉산 백운대의 느낌을 그대로 전해 받았던 문장대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꼭대기에서만이 맛보는 절정감을 또 한번 느끼면서 허기진 배들을 채웠다.

등산객들로 가득찼던 정상은 자리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빽빽했고 다른곳과는 달리
정상까지 휴게소가 있어 '국수 일곱개 나왔습니다'하는 확성기를 통해서 흘러 나오는
구성진 목소리가 한바탕 웃음 속으로 끌어들이며 우리들의 끼니는 그렇게 채워졌다.

무작정 퍼질러 앉아 놀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니였기에 우린 서둘러 문장대에서 
신선대까지 20여분의 오름길을 마지막으로 하산길로 접어 들었다.
내리막길을 더 힘들어 하는 나....
남들보다 더 축처진 발걸음으로 천천히 내려 가면서 발가락 끝이 아파 옆으로 발을 
내딛였고 그런 걸음걸음으로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다.

내려오는 길에 한분이 조리대 하나를 뜯어 종이배를 만들어 주셨다.
잠시의 동심을 느껴 가면서...

그리고 산수유꽃처럼 보였던 노란꽃, 꽃에서 생강냄새가 난다 하여 붙여졌다는 
생강나무(아래사진)...
내려가면서 맡았던 생강나무에서는 생강냄새가 아닌 노오란 개나리꽃내음이 나와
힘들때마다 다시 코를 갖다 대곤 했는데 아무리 맡아도 생강냄새가 나질 않았다.
내 코가 이상했는지....

마지막으로 법주사에 들어가 요모조모 살펴 보면서 다리를 풀며 휴식을 취했다.
30년 전의 기억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던 법주사...
아슴푸레히 예전엔 풀로 뒤덮였던 절이었던 기억에 지금은 깔끔하게 단장된 절의 모습이 
교묘히 엇갈리면서 클로즈업 된다. 
 
팔상전, 쌍사자석등, 원통보전.....
많은 유물들이 유구한 역사를 대변해 주듯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33미터나 되는 거대한 
청동미륵불상 앞에 서 있는 우리 인간의 왜소함에 서로 잘났다고 사는 세상 속 미물일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이 드러났고 그 웅장함 앞에서 자세히 읽어보고 바라보고 살펴보는
사람들보다는 한컷 한컷 찍는 사람들에게 배경좋은 미륵불로 보인다는 것이 조금의 아쉬움
으로 남아 있었다.

네시간 반의 산행과 9시간의 왕복 차시간...
새벽 다섯시에 출발하여 밤 열시까지 보낸 산행의 하루는 여늬때보다는 다른 산행이었다.
30여년 전의 기억을 잠깐이지만 끄집어 내었고 많은 식물지식과 유적지 탐방으로 
내 마흔다섯의 추억 한장을 만들어 내고 마무리했던 하루였다.

속리산아...속리산아...
내 너를 두고 다시 속세로 돌아와 내 생을 열심히 살아 보련다 잘 있거라...마음 속으로
되내이면서 이렇게 나의 속리산행기를 접는다.


'바르고 참된 도(道)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데, 사람은 그 도(道)를 멀리하려 들고, 산(山)은 속(俗)과 떨어지지 않는데, 속(俗)이 산(山)과 떨어졌다' - 崔致遠 - 동해바다 음악실<==== 클 릭 산아 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