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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천벌을 받았나 보다


BY 이쁜꽃향 2003-04-08

엄마 산소에 묘목을 심기로 했다.
여동생이 도착하기 전 묘목을 사 두어야겠기에
조경하는 곳엘 들렀다.
난 고추 모종이나 꽃 모종처럼
가볍게 들고 갈 묘목이려니 상상하고
향나무 세 그루와 예쁜 꽃이 핀 동백 나무 세 그루를 주문했다.
삽은 미리 챙겨 트렁크에 넣고
여동생 마중을 갔다.

식목일이 연휴를 만들어 버린 데에다
일요일이 한식이라 성묘객이 많을 거라 계산하여
우린 식목일 전 날 오후로 택했던 것이라
아무도 오지 않는 호젓한 산 길을
오붓하게 엄마 이야길 나누며 산소로 향했다.

그렇게 기다려도 꿈길에서조차 안 뵈시던 분이
이틀간 잠시 몇초간 긴가민가하게 보이셨다.
그런데 무슨 드링크제를 드시고 싶다는 게 아닌가.
마침 그 구멍가게에 한 병 밖에 없는 그 드링크제를 가리키시며.
막 사려고 하는데
'아니~, 더 많이...'하신다.
꿈에서도 이 못된 성질머리가 엄말 힐끗 쳐다 보며
'참, 별스런 양반이시구만.
얼마나 드시겠다구 많이 사 달래...'
궁시렁대며,
'아줌마.
저 드링크제 한 박스 주세요.'했다.
주인은 병 박스는 없다며
피티병 넓이의 두 배 쯤 되는 크기의 병을 준다.
꼭 참기름병 같네 생각하며,
'응, 엄마!
많이 드세요.'하며 병을 건네려다 꿈이 깨었다.

그 꿈이 마음에 걸려 그 드링크제도 한 박스 샀다.
산소는 산꼭대기라
오륙층 정도의 계단을 올라 가야만 한다.
묘목을 살 땐 주인이 차에 실어 준 거라 몰랐는데
그렇게 무거울 줄이야...
흙덩이의 무게가 있어서 그런 모양이다.

원래 손목의 힘이 약해 물 바가지도 안 드는 내겐
정말 힘 겨운 일이었다.
아마도 이십킬로의 쌀 가마와 무게가 거의 비슷한 듯 싶었다.
손으로 들기엔 역부족인지라
일꾼들처럼 왼쪽 어깨에 걸치고
헥헥거리며 간신히 산소에 당도했다.
식은 땀이 주루룩 등줄기로 흘러 내린다.
다른 때 같으면
산소가 보이는 그 순간부터 눈물이 앞을 가리는데
얼마나 혼쭐이 났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울 기력 조차 없다.
눈 앞이 뿌옇고 다리에 힘이 다 풀려 버렸다.

가지고 간 드링크제를 풀어 놓았다.
"엄마!
물도 못 드시고 가시더니 목이 마르셨수?
엄마가 드시고 싶다던 그 음료수
많이 드세요."
4배를 올리고 음료수를 산소에 뿌려 드렸다.
"한 병은 부족할 거 같으니 두 병 뿌려 드리자"

묘목을 심기 위해 구덩이를 파야 했다.
그런데 그 일이 정말 만만찮은 것이지 않은가.
너무나 쉽게 생각해 버린 일이었는데
처음 해 보는 삽질인데에다
바닥이 온통 자갈 밭인지
삽이 잘 들어가지도 않는다.
낑낑대는 모습을 보다 못한 여동생이
자기가 하겠다고 나서려다 주변을 돌아 보더니
"언니!
괜히 삽 가져 오느라 고생했다.
여기도 삽이 세 자루나 있네..."
이런, 쯧쯧... 머리 나쁘면 수족이 고생이라더니...
전에 그 자리에 있는 걸 봤으면서
삽 들고 오느라 얼마나 더 힘 들었는데...

여섯 그루 모두 심고 나니 몸이 금방 쓰러질 지경이다.
사실은 오전부터 컨디션이 별로 안 좋았었다.
식은 땀 위로 갑자기 휭하니 찬바람이 드는 듯 하더니
오한기가 확 느껴 졌다.
" 엄마. 다음에 또 올께..."
내려 오는 그 순간부터 온몸에 열이 확확 오르는 게 느껴진다.
여동생은 온 김에 김치를 담궈주겠다며 장보러 가잔다.
그만 두자고 할 수도 없어
동생댁을 불러 시장으로 향했다.
나는 차에서 웅크린채 덜덜 떨며 꼼짝도 못하고
그녀들이 하는 양만 지켜보아야 했다.

집에 오자마자 쓰러졌다.
겨울에도 뜨거운 옥메트를 싫어하던 내가
부랴부랴 옥메트를 켜고 온도를 올렸다.
이불을 덮었는 데에도 춥기만 하다.
열은 점점 오르고
온 몸이 안 아픈 곳이 없다.
어깨, 무릎, 발목...
아마도 내 딴엔 무거운 걸 들고
그 높은 곳을 걸어 올라 가는 게 힘겨웠던 모양이다.

밤에 중국어 회화 과외가 있는 날이라
꿈쩍도 하기 싫은 걸
과외 끝 나면 담당 선생-중국 유학생-을 학교로 태워다 줘야기에
남편에겐 아프단 내색도 않고 찌푸린 채
웅크리고 앉아 과외 시간을 보냈다.
약국 문 닫을 시간이 임박한 지라
부랴부랴 동네 한 바퀴를 하는데 정말 거의가 문을 닫은 상태.
겨우 약을 샀다.
"아마 밤중에 해열제를 한 번 더 드셔야 할 거예요.
편도선염이 올 거 같아요, 무리하셨나 봐요."
약사의 말을 뒤로 한 채 부랴부랴 집으로 왔다.

약을 먹어도 밤 내내 열은 내리지 않았다.
엎치락 뒤치락 마치 엑스레이 찍듯 뒤척이며
그 밤을꼬박 새워야 했다.
어쩌면 밤은 또 그리도 길고도 긴지...
이보다 더 기나긴 겨울밤을
엄마는 거의 혼절하신 상태로 몇일 밤을 새셨던가...
양심의 가책으로 마음까지 아려온다.
엄마...미안해...
정말 미안해...
엄마 고통을 너무 나 몰라라 했었어...
어리석은 후회가 또 가슴 한 켠을 후빈다.

아침이 되자마자 동네 병원에 전화를 하였다.
여동생은 훨씬 전부터 일어나
혼자서 고추 다듬고 뭘 씻고, 썰고, 끓이고하는 모양인데...
마음은 미안해 죽을 지경인데
내 몸이 더 고통스러우니 도와 줄 엄두가 안 난다.
내가 할 줄 아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누가 언니고 누가 동생인지...

운전할기력도 없어
거의 기다싶이 병원엘 갔다.
"어휴~,열이 심하시네요.
아마 오늘 밤엔 편도도 많이 부을 겁니다."
담당 의사가 링거를 권했다.
아무 기운이 없어 그러라고 했다.

식목일에 유달산에 행사가 있어 참여해야하는데...
지금은 그딴 약속은 안중에도 없다.
링거를 꽂고 침대에 누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난 지금 천벌을 받는거야.
엄마가 이렇게 몇 날 몇 일간을
열 나시고 혼자 밤을 새셨을텐데
난 단잠을 잤었으니까...
저 맞은 편에 엄마 링거 맞으시는 동안도
난 곁에서 지키지도 않고
잠시 집에 다녀 온다고 나갔었지.
솔직히 병실에 있기 지루하니까...
엄만 나보다도 훨씬 더 심하게 편찮으셨는데...

그래,난 지금 벌을 받고 있는 거야...
그 고통이 어떤 건지 한 번 맛 보라고
하늘이 내리신 벌인게야.
엄마...엄마...
얼마나 아프셨을까...가엾은 울엄마...
아프시단 말씀도 못 하시고 혼자서 끙끙 앓으셨지...
엄마...미안해...
용서해 줘...
세시간여를 비몽사몽하다 보니
어제 남편이 경실련에서 유달산에 '야생화심기' 행사가 있는데
나도 함께 가야한다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시에서 주관하는 '개나리꽃 축제'도 못 가고 있는데...
참석하겠다고 답변까지 해 뒀는데...
미안하단 메시지를 남편에게 날렸다.
'당신 안 아픈 게 도와주는 거야.
영양제랑 맞고 푹 쉬어'

그렇게 이박 삼일을
고열과 편도선염의 통증으로 아무것도 먹지 못한채
십여일을 물 한 모금도 못 드신채 병실에서 지내신
엄마의 고통을 느껴보아야 했다.

'엄마가 네게 정 떼시려고 그런거야'
지난 번 사십구제 무렵
후두염으로 십여일을 고생하는 내게 친구가 말했었다.
정말 그런 걸까.
산소에 간 그 날부터 갑자기 아프게 되다니...

이젠 그만 좀 애통해 하라고 나무라는 친구,
'엄마.
왜 자꾸만 엄마 땜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자책하세요?'라고
매정하게 말하는 큰 아들넘.
'엄마.
할머니가 이젠 제발 마음 편히 가지라고
일부러 엄마 아프게 하시는 거잖아.
그러니까 엄마도 할머니 맘 좀 편하게 해 드려.
엄마 이런 모습 할머니가 아시면
할머니 맘이 편하시겠어?
그러니깐 이젠 제발 고만 좀 울고...'라며
어른스럽게 나무래는 둘째녀석.

정말 정을 떼시려고 이렇게 아픔을 주시는 걸까...
나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우셨을 엄마를 생각하면
그리고 적당히 나 몰라라 했던 내 자신을 떠올리면
가슴이 너무 아프다.
엄마. 정말 미안해, 엄마...
수도 없이 입버릇처럼 중얼거려 본다.
연휴 동안 날씨도 그렇게 화창했다는데...
남들이 모두 좋아라 하는 이 화사한 봄이
왜 이다지도 가슴 아픈지...
내 마음은 왜 아직도 겨울인지...

난 지금 천벌을 받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