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노쇼 차단을 위해 식당에서 예약금을 받 는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533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2)


BY 잡초 2003-04-04

한아름의 생활정보지들을 펼쳐놓고 눈앞이 흐릿해질때까지 구인란을 꼼꼼히 체크해 나간다.
집에서 제일 가까운 거리로부터 내가 제대로 소화해낼수 있는 일거리까지
볼펜으로 표시해가며 전화를걸 우선순위까지 난 시험공부하듯
그렇게 체크와 메모를 한뒤 번호순대로 전화를 해본다.

" 주방일은 해 보셨나요? "
" 아니요... 그냥 설겆이만 한달쯤... "
" 저희는 경험자가 필요합니다 "
" 네에~ 일은 열심히 할수 있는데요 "
" 죄송합니다 "

딸깍!
끊어진 전화기 앞에서 난 신문으로 눈을돌려 과감히 아까의 그 번호에 가위표를 친다.

" 신문을 보고 전화드렸는데요 "
" 경험은요? "
" 한달쯤 설겆이만 해 보았는데요 "
" 죄송합니다만 안 되겠는데요 "

또다시 가위표.
가위, 가위, 가위....

홀에서 서빙만 겨우 석달 해 본사람이 주방에서 일을 한다고 나선것부터가 내겐 무리였나보다.
전에 일하던 집에서도 나이를 몇살 아래로 속여 일을 했지만
이젠 식당 종업원일도 주민등록 등본이 필요하다고 하니
나이를 속이는것도 그리 수월치만은 않게 생긴대다
돈이 좀 모아지면 내 장사라도 해 보고싶은 욕심에 주방일을 택한것이었다.
아무래도
주방에서 일을 해야지만 음식도 배울수가 있고 내가 음식을 알아야 남도 부릴수 있겠기에
많고많은 홀서빙 구합니다 라는구인란에는 눈도 돌리지 않은채
주방일에 나를 써주십시요~ 매달리고 있다.

어느덧 집에서 가까운거리는 모두 거절을 당하고
차근히 나는 버스를 타도 최소한 짧은거리로 부터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벌써 몇군대인가?
수를 다 헤아리지도 못할때쯤 유성 숯불갈비하는 집에서 한번 나와보라고 한다.
주방도 홀도 사람이 필요한데 일단 만나서 얘기하지고.

면접인데...첫 대면인데
샤워부터 시작해 화장까지 마무리를 짖고 난 그곳 고기집으로 향했다.

" 경험은요? "
" 주방일은 설겆이 한달쯤 해 보았고요. 홀일은 몇달 되었읍니다 "
" 고기집에서는 일 해 보았어요? "
" 아뇨. 처음입니다 "
" 무슨일을 하고 싶으세요? "
" 주방일 아무거나 시키는대로 다 할께요 "
" 사실 주방은 다 찾고요. 홀에 사람이 필요한데 우선 홀일을 하시다가
주방에 사람이 빠지면 그때 주방으로 들어가시죠 "
" 그럴까요? 홀은... 고기집 경험이 전혀 없어서요 "
" 별거 아니예요. 그냥 보고 배우면 돼요. 그러니 내일부터 출근하세요 "
" 아~네 고맙습니다. 열심히 해 볼께요 "

난 마음이 급해져있기에 아무거나 닥치는대로 우선은 해 보려했었다.
움직임이 심한곳이 식당일이라는것을 몇달의 경험을 통해 이미 알았기에
하루던 이틀이던 한달이던간에 홀에서 일 하다보면 주방에 들어가기가
훨씬 더 쉬울거 같았고, 오며가며 주방을 들여다보다보면 생꼬잽이보다는
일을더 빨리 알수 있을거 같아 선뜻 그러마를 했다.

출근첫날.
일복으로 갈아입고 먼저온 동료뒤를 열심히 쫓아 귀로, 눈으로 일을 배워본다.
청소를하고 설겆이를 하고 야채를 씻고...
그동안 한달여를 집에서 쉬었다고 몸이 뻐거우며 제대로 말을 안들어준다.
낮동안은 한가하다 싶던 손님들이 저녁때가되자 우르르르~ 정신없이들이닥친다.

한참을 눈, 코 뜰새없는 그 시간에...
손이 몇개쯤 발이 몇개쯤 더 있었으면 싶을 그 시간에...
갑자기 오른손 손가락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안으로 안으로...새끼손가락부터 가운데 손가락까지...그렇게 말려들고 있었다.
왜 이러지? 내 손이 왜이러지?
급한 마음에 왼손으로 있는힘껏 오른손가락들을 제자리에 돌려 놓으려 해도
내 오른손의 세 손가락들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렇게 마구마구 반란들을 일으키고 있다.

" 아줌마. 여기 고기 몇인분 더 주세요 "
" 아줌마. 여기 반찬좀 주세요 "
" 언니, 몇번테이블에 상추하고 마늘좀 갖다줘요 "

빗발치듯 주문들은 해 ?患쨉?.. 움직일수가 없다.
움직일수야 있지만...쓸수없는 손을 갖고 난 무얼해야 하는걸까?
제발...제발...
삐직삐직 진땀이 이마위로 배어나오고 등줄기로 흥건히 땀줄기가 흐른다.
당혹스러움에 사방을 둘러보다 마주친 사장의 눈빛은...

그렇게 한 삼십여분쯤 내 손들과 실갱이를 치고보니 스르르 맥이빠지며
그냥 그자리에 털썩 주저앉고만 싶어진다.
주무르고 두드리고 어찌하다보니 다시 손가락들이 원래대로 돌아가고
남은시간...최선을 다해 몇곱으로 뛰어본다.

이튿날도 어김없이 나는 출근을 하였고
까마득히 어제의 일은 잊고 있었는데....

걸레로 바닥을 약물을 뿌려가며 빡빡 힘주어 닦고나니 오른쪽팔이 후들거린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화장실로 달려간 나는 얘야제발을 속삭이며 왼손으로 꼭꼭 주물러준다.
화장실에서 너무오래 있는것도 눈치가 보이는터라
서둘러 식당내부로 들어오니 더러워진 방석들과 물수건...앞치마들이 싸여있다.
" 세탁기 돌리시게요? "
" 여긴 세탁기 없어요. 손빨래 해야되요 "

한가한 주방으로 나간 세 사람은 주방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빨래들을 치댄다.
얼마쯤을 했을까?
고무장갑을 꼈다고는해도 냉기가 손목을 거쳐 어깨까지 올라오는 느낌을 받는다.
헹구는 내 손들은 자꾸만 헛손질이 되고...
얼기설기 매어놓은 빨래줄에 힘주어 빨래들을 짜 널고 돌아서는데...
오른손이 사시나무떨리듯...그렇게 떨려온다.
얘가 또 왜이러나?
한참을 정신없이 주무르고 있는데... 시선이 따가웁다.
언제부터 사장은 나를 보고 있었을까?

" 여기 이 숯불좀 저기 홀언니한테 갖다주세요 "
빈공간이 얼마없을 정도로 저녁손님들은 들이차있고 불은 배운뒤에 만지라던
선배들의 말과는 달리 손이딸리고 바쁜중이라 그랬는지
실장이라는 사람이 내게 시뻘겋게 달아오른 숯불통을 내 민다.
" 아, 네. "
대답을한 나는 부지런히 선배홀언니 앞으로 종종걸음을 친다.
중간쯤을 갔을까?
털썩!
어머야!

말썽꾸러기 내 오른손이 다시 반란을 일으키며 그예 크게 일을 저지르고 만다.
장판바닥으로 숯불들은 쏟아지고...
옆에있던 여자손님은 놀라 고함을 지르고...
사장은 쫓아오고...

난...아무것도 할수가 없었다.
악을쓰고 오그라드는 내 오른손가락들을 기를쓰고 내 왼손은 막아낼뿐...

" 아주머니 퇴근준비 하세요 "
사장의 목소리가 등뒤에서 들려온다.
" 네, 요것만 마무리 해 놓고요 "
" 그냥 놔 두시고 퇴근하세요 "

신발을 신으며 흘낏 카운터를 바라보니 사장의 손에는 하얀 봉투가 들려져있다.
( 해고구나 )
직감적으로 난 그 하얀봉투의 의미를 깨닫는다.
" 수고 하셨구요. 내일부터는 오시지 않았으면 합니다. "
" 제가...실수를 많이 했지요? "
" 제가 보기에 아주머니는 절대로 힘든일 하시면 안되겠어요.
아주머니를 계속쓰다가는 우리집에서 일 치를거 같아요.
식당일 같은거 말고... 쉬운일 찾아보세요 "
" 예... 어제오늘 폐만 끼쳤읍니다. 안녕히 계세요 "

냉정히 사장은 식당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난, 허위허위 발걸음을 내 딛는다.
무단횡단으로 차도를건너 후미진 한적한곳에서 털썩 길바닥에 퍼질러 앉는다.
가방안에 세가치의 담배가 남아있다.
뿜어지는 연기속의 하늘은...아무것도 보이지를 않는다.
흐르는 눈물때문인지... 아니면 담배연기때문인지...

벼엉신~
아무것도 갖은게 없으면 몸이라도 튼튼할것이지
드~응신...
허공을 향해 내 뱉는 내 가래침은 세상을 향해서가 아니라 바로 내 자신에게였다.

걷고..
버스를타고..
또 걷고..

집에 도착한 시간이 자정쯤.
갑자기 허기가 밀려온다.
이틀을 일한 이집에서도 저녁밥은 주지 않았었다.
밥솟에 있는 찬밥덩어리를 보리차의 냉기만을 가시게 한채 냉장고에서 달랑 김치하나만을 꺼내어온다.
물에말은 밥을 씹을 사이도 없이 목구멍으로 밀어넣는다.
삐그덕~
현관문이 열리며 남편은 모습을 보이더니 나란사람이 투명인간이라도 되듯...
씻는소리가 들리고 방문열리는 소리가 들리고...그리고방문 닫히는소리...

싸아하니 가슴이 시려온다.
툼벙! 눈물방울과 함께 남은밥을 비워버리고 빈 젖가락질만을 해 댄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라는 자문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