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지 못하고 쌓아 두는것들
친정어머니는 시장에서 물건을 담아 온 검정봉지 하나도 버리지 않고 주방 구석구석 끼워 넣으셨다. 주방 싱크대 밑엔 60년대 후반에나 나왔음직한 귀 떨어진 양은냄비와 손잡이가 떨어지고 켜켜이 기름때에 절은 프래이팬도 보였다. 그러나 이게 언제적 쓰던 물건인가 싶은 프라이팬도 생선구이라도 하는 날이면 가스불위에 올려져 프라이팬 노릇을 하고 있었다.
주방 한쪽에 버젓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오래된 장식장에는 스텐레스제품으론 제일 좋다는 27종 뱅뱅이 밥그릇 하며 국대접이 진열장 맨 꼭대기에 올려져 있어 어머니가 아끼는 물건이었다는 사실을 말해 주었다. 사실 그 뱅뱅이 그릇들은 내 어릴 적부터 시작해 어른이 될 때까지 집안 경삿날이면 으레 컷 장식장 꼭대기에서 내려져 쓰였는데 ...
처녀시절 이따금 어머니께 "요즘 예쁘고 값싼 그릇들이 얼마나 많은데 구닥따리 그릇들 좀 다 버리라고 "채근하면 어머니는 성화를 내시면 "헌 것이 있어야 새것도 있는겨 "라며 눈을 흘기셨다. 그래서 그런가 친정집엔 좀처럼 새 물건을 사들이는 일이 없었고 쓰던 장독 아가리가 금이 가면 철삿줄로 동여매서 쓰셨고 몸체에 금이 간 장독까지 시멘트로 땜질을 해서 쓰셨다 그렇게 사시는 어머니를 보고 자라서 그랬을까! 시집이라고 늦은 나이에 와 보니 시어머니란 양반도 울 친정 엄마 같은 분이셨고 그런 시어머니 모시고 살던 나의 살림살이도 친정집보다 별반 나을 것이 없었다.
낡은 진열장엔 친정어머니와 모양도 똑 같은 뱅뱅이 대접에 그 시절엔 그래도 눈 딱 감고
돈 좀 주고 사셨다는 빛바랜 장미 문양이 그려진 황실장미접시 세트가 모셔져 있었고 전기커피포트가 한 켠에 놓여 있어서 "시집은 그래도 우리 친정집 보다 나은가 보다"! 생각했는데 그 커피포트의 용도는 나이 먹은 도련님의 콘택트렌즈를 소독하는데 쓰이고 있었다.
그럭저럭 시집와서 몇해 살다 주방을 거실에 들이는 공사를 하게 되었는데 나는 시어머니에게 예전에 쓰던 물건들을 그만 버리자고 했더니 시어머니도 친정어머니처럼 서운한 표정을 지으셨다. 난 할 수 없이 어머니가 쓰시던 낡은 장식장을 예전 연탄 광으로 쓰던 곳간으로 옮기고 내가 시집올 때 해 온 그래도 좀 낫다는 내 방에 놓여 있던 장식장을 주방으로 옮겼다 .그렇게 지내기를 6 여넌, 오늘 가만히 장식장에 놓여 있는 물건들을 들여다 보니 나도 어느 사인가 예전 어머니들의 세간살이 구색과 똑같아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이 든 나의 장식장에도 버리자니 아깝고 두자니 자리만 차지하는 색색 가지 플라스틱 찬동들과 몇 주년 기념이라고 슈퍼나 가게에서 준 유리그릇들과 컵이 자리를 자리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 제일 위층 선반에 놓인 스텐 냄비들은 시집와서 처음으로 내 돈 주고 산 냄비들이라 아끼느냐고 안 쓰고 모셔 놓기만 해서 깨끗만 했지 지금은 남에게 거저 줘도 안 가져가는 물건으로 전락했으니...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의 장식장을 똑 닮은 나의 장식장을 바라보니 한심하단 생각보단 그 어머니의 그 딸이란 만고의 진리가 생각난다. 어느날 시집간 막내 동생이 오랜만에 놀러와서 내 살림살이를 쭉 둘러보더니 "에고 언니야 다 버려라 사람만 남기고, 이 다음에 아파트라도 사서 이사가는 날엔 이 집에서 가져갈 물건은 하나도 없다 애들이랑 형부밖에" 하면서 혀를 찬다.
그런 여동생이 말을 듣고 예전에 친정어머니가 흘기던 눈초리로 동생을 흘겨보니 동생은 그런 나를 보고 엄마랑 똑같다며 웃는다. 그려! 세상에 버리면 다 사야 할 물건인데 이담에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 해도 숟갈 몽둥이 하나 빠짐없이 내 다 가져 갈 거다. 남편은 버리고 오면 본인이 알아서 찾아오겠지 요즘 젊은 여자들 정말로 버려야 할 게 뭔지도 모르며 쌓아 두고 살면서...
안방 다락에 올라가 분홍 플라스틱통을 열고 묵가루 한 컵을 퍼 왔다. 평소 시어머니가 애지중지하시던 도토리가루, 시어머닌 이름 붙은 날이나 되야 묵을 쑤셨는데 다른 반찬 만드는건 다 며느리에게 맡겨도 이 묵 쑤는 일만은 당신이 손수 하셨다. 몸이 뚱뚱하신 어머니는 휴대용 가스를 마루에 놓고 바닥에 철퍼덕 앉으셔서 묵을 쑤신다 .
그러면 나는 시어머니 옆에 앉아 눈요기만 하고 "물 떠와라 하면 물 떠오고 손에 자귀 바람이 드는구나 대신 젓거라 "하면 젓는 일만 했다. 그래서 시집살이 18년이 되도록 묵은 전혀 못 쑨다. 예전 청기와쟁이가 기와 만드는 법을 자식에게조차 전수 안 하고 죽었듯이 시어머니도 작년 3월에 그렇게 돌아가셨다.
오늘은 묵을 한번 잘 쑤어봐야지! 돼도 묽지도 않게... 며칠 전 미리 잘 아는 동네 아줌마 한테 묵 쑤는 법을 알아 두었다. 묵가루 한 컵에 물 여섯컵의 비율로 쓰면, 되도 묽도 않다는 말을 들었고 시어머니께서 도토리묵을 쑤실 때마다 하시는 말씀 " 그저 묵은 뜸을 푹 오래 잘 들여야되" 그래야 묵을 무쳐놔도 끊어지지 않고 쪼득거리거든...
언제 적 묵가루 인가? 어머니 병석에 눕기 훨씬 전에 해 놓으신 도토리가루니 세월이 지나도 팔 년은 족히 되었나보다 .마른 가루에 물을 부어 휘 휘 저어 놓았다가 윗물은 버리고 그릇 바닥에 고즈넉히 남아 있는 젖은 묵 가루에 여섯 컵의 물을 붓고 가스불에 올려 놓고 가만 가만 젓는다. 한 세월이 가고 또 다시 한 세월이 젓고있다.
무슨 일이든 인내가 필요하지만 묵을 쑬 때도 대단한 참을성을 필요로 한다. 덤벙대는 내 성격으로 묵을 쑨다는 자체가 고문의 시간이다. 혹시 이런 내 성격을 살아 생전 시어머니가 아셨다면 어머닌 묵 쑤는 일을 내게 맡겨 참을성을 길려 주셨을 지도 모를 일이지만 이젠 가고 없으시니 그저 애닮플뿐이다.
무슨 일이든 끝이 있는 법 도대체 엉기지 않을 것 같은 묵 물에 덩어리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부턴 이제 젓는 횟수가 아주 빨라 진다. 잠시 잠깐 딴 생각에 젓는 일을 게을리하면 영락없이 바닥에 눌려 붙으니 도 닦는 일이 어디 절간에서만 있는 일인가?
이렇게 부글거리고 끊으면 이젠 뜸 들이기, 솥뚜껑을 닫은 후 불세기를 약하게 해놓고 뜸을 들이는데 묵위로 구멍이 동그랗게 퐁퐁대며 올라오면 장식장 맨구석, 이제나 저제나 팔릴까? 나이 서른을 훨씬 넘긴 얼굴엔 윤기라곤 없는 눈빛만 선선한 노처녀 같은 뱅뱅이 대접들을 꺼내 시어머니 앞에 하나씩 늘어 놓는다. 시어머니는 큰솥에 담긴 흙빛 닮은 뜸 잘 들인 묵 물을 대접 마다 부으셨다.
요건 큰딸 줄 거, 요건 막내딸 , 요건 성남사는 둘째 딸, 요건 인천사는 시누님 것, 뱅뱅이 대접마다 담긴 묵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모양과 크기가 같아서 어머니의 오랜 경력을 말해 주고 있었다.
오늘은 한컵 묵가루에 여섯컵의 물을 먹은 나의 묵이 끊고 있다. 불을 조금 약하게 하고 젓는다. 과연 시어머니가 쑨 것 같은 묵이 될 수 있을까? 나의 묵도 어머니가 쑤시던 묵처럼 묵 위로 동그란 구멍이 쑹쑹 뚫리며 끊는다.
얼른 불을 약하게 하고 뚜껑을 덮었다. "그래 묵은 뜸을 아주 오래 푹 들여야 하는거야!" 시어머님이 옆에서 속삭이신다.
장식장 맨 밑에서 뱅뱅이 대접을 꺼냈다. 마루에 시어머니님이 계실 적 처럼 대접들을 늘어 놓았다. "이젠 뜸이 다 들었을까? 아니야 조금만 더... 이젠 다 됐을꺼야, 그러지 말고 조금만 더 있다 붓거라!" 시어머님이 옆에 앉아 속삭이신다. "그래 이젠 다 됐다. 이젠 뱅뱅이 대접에 붓거라.!"
세 개의 뱅뱅이 대접에 펄펄 끊은 묵을 붓는다. "뜨겁다 아가야 저 다락 분홍 프라스틱통에 묵가루가 다 없어질 때 까지 이 뱅뱅이 대접은 버리지 마라!" 시어머니는 시집살이 십 팔 년 동안 한 번도 불러주시지 않으시더니 이제사 "아가야" 하고 부르신다. 내 눈엔 어느새 눈물이 흐른다.
"그려 헌것이 있어야 새것이 있는겨" 두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오늘도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는 것이 어디 이것뿐이랴.
쌓아두는 것들이 날 내려 놓는 날이 언제쯤일까? 그때까지 난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세상 것들을 쌓아 두겠지. 이 구석 저 구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