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에 조문 갈 일이 생겼다.
내가 볼 일만 생기면 덩달아 일이 생기던 시어머니도 오늘따라
집에 계시고, 좋은 일로 가는 것도 아닌데,
생각지 않은 혼자만의 외출에 가벼운 설레임도 인다.
봄이라 그런지, 병원이라서 그런지, 내 삶과 무관한 죽음이라성지, 혹은 억울할 것 없는 생애라 그런건지,
한산한 병원에 마련된 식당엔 그다지 슬픔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나보다 세살 어린 내 동생의 머리가 반은 벗겨져가고, 나머지 반은 희어가고 있는게 노인의 죽음보다 더 슬프다.
숙주나물에 콩나물 키우는 일이 힘든지 손 끝이 다 벗겨졌다.
철없는 녀석을 세상이 가르치고 있나보다.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는데, 산방산 절에 다니는 숙모가 뜬금없이
"너도 이제 절에라도 다녀야지."한다.
"누나 그런거 싫어하잖아." 동생이 나를 잘 아는 척한다.
하긴, 동생의 그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정확한 표현도 아니다.
한때는 나도 불교학생회 활동도 열심히 했고, 다른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인정한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 기도하고,절대자에게 의지해 위안을 얻는
일도 자신의 힘만을 믿고 오만한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현실의 눈을 가리는 맹신도만 아니라면 말이다.
나의 믿음은 단 하나,'盡人事 待天命'이다.
사람의 할 일을 다하여, 하늘의 명을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인간 권한 밖의 문제는 내가 어찌할 수 없고,
다만 일이나 삶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열심히 하고,
하늘의 처분을 기다리겠다는 것, 그것이 나의 신앙이다.
천명이 나의 뜻을 져버리릴 땐, 나의 일을 다 하지 못했나
반성한다.
그래서 나는 세상의 모든 종교를 받아들이고 하고,
모든 종교들을 배척하기도 한다.
절에도 성당에도 교회에도 갈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성스런 성전에서 나는 내 자세를 돌아볼뿐이다.
나는 내 일을 다하고 있는가?
바다만 보던 눈에 파릇이 돋아난 보리밭이 가득차고,
달리는 길에 봄 햇살 가득하다.
캐다만 배추 밭에 드문드문 꽃대 선 배추에서
노란 향내가 나와 폐 속으로 스며든다.
아직은 휑해 보이는 저 들판에도 꼼지락 거리며
온갖 싹들이 자랑스런 떡잎을 내밀며 돋아나고 있을 것이다.
열린 창 사이로 봄이 실려 들어 온다.
겨울을 밀어내고 솟아나는 봄,
맺힘없이 ,얽힘없이 풀어내는 자연은,또 하나의 나의 신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