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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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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오는데


BY 이쁜꽃향 2003-02-27


어느새
그 추웠던
가슴 아팠던 겨울이 가고 있는데
따스한 햇빛 내리쬐는 봄은 오는데,
주변에 변한 건 아무 것도 없는데
아직도 내 마음은 쓸쓸함 뿐이다.
날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 서면 가슴이 콱 막히며
너무나 허전한 마음에 눈물이 앞 선다.

사람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쉬이 표가 난다더니
늘 조용히 자릴 지키고 계셨던 친정어머니의 빈자리가
이다지도 컸던 것이었나
온 세상이 거뭇거뭇 어둠 속에 잠길 즈음이면
가슴 한 구석이 어찌나 아리는지
결국 엄마 사진을 부둥켜 안고 울고 만다.

이렇게 내 삶의 커다란 부분을 그 분이 자리하고 있었단 걸
예전에 왜 몰랐었을까.
가시고 나면 후회하고 가슴 아파할 줄 알았으면서도
엄마의 마음을 미처 헤아려드리지 못했던 불효가
너무나 가슴을 후빈다.
매일 아침이면 퉁퉁 부은 눈으로 출근을 하지만
마음은 늘 엄마 생각 뿐이다.

내가 왜 일을 해야 하는지,
굳이 출근해야 할 이유가 뭔지,
시시콜콜한 이야기거리를 이젠 누구랑 나눠야 할까.
유난히도 추위를 못 견뎌하시던 엄마 생각에
따사로운 햇볕이 반갑지만은 않다.

웬지 엄마가 날 기다리고 계실 것만 같아
서둘러 산소로 향했다.
왜 그다지도 서러운 생각이 드는 건지
마치 이 세상 천지에 홀로 남겨진 느낌이 드는 건 무슨 까닭인지
서둘러 엑셀레이터를 밟는데
자꾸만 눈물이 흐른다.
생시에 꽃 사 오면 쓸 데없는 낭비라고 아쉬워하셨지만
하얀 국화 한 다발을 준비하여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는데
저 위에서 마치 엄마가 날 내려다 보실 것만 같다.

언젠가 엄마는 지금의 상황을 말씀하셨었지.
'차디 찬 땅 속에 누워 있으면
느이들이 왔는지 갔는지도 모르겠지.
엄마 엄마 울면서 불러도 대답도 못 할 테고...'
눈물 젖은 목소리에 뒤돌아 눈물 훔치며
쓸 데없는 말씀 말라고 난 퉁명스레 막았었는데
정말 엄마 말씀이 이젠 현실이 되었다.
아무리 통곡하며 애타게 불러도
묵묵부답인 엄마.
너무나 가슴이 아파
무덤을 끌어안고 얼마를 울다 내려오는데
내 속 알 리 없는 까치 몇 마리가 배웅해 준다.

세상은 아무 것도 변한 게 없는데,
그 아픈 겨울은 가고 봄은 오고 있는데
내 가슴엔 아직도 슬쓸한 겨울 뿐인 걸 어쩌랴.
45세에 남편과 사별한 선배님께
철부지처럼 물었다.
'선생님.
대단히 죄송스런 질문인데
남편 사별과 엄마 돌아가신 것 중
슬픔의 비중이 어느게 더 클까요?'
난 아무리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도
남편이 죽는다고 이만큼 슬프랴하는 마음 뿐이다.
생전에 제대로 효를 다 하지 못한 죄스러움에
가슴은 더 미어지기만한데
인간이란 게 어찌 그리 어리석은지...

'부모님 살아실제 섬기기란 다 하여라...'
자식은 효를 하려 하나
이미 그 부모는 이 세상에 없더라는 옛 글들을
모르지도 않는 터에 지키지 못하는 어리석음.
어차피 내 자식들도 나처럼 후회하며 날 보내겠지...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종교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젠 영혼이 존재한다고 믿고 싶다.
그래야 내 어머닐 영영 보내버리지 않을 것만 같다.
불교의 윤회설처럼
다음 세상에서 엄마와 다시 만나고 싶다.
그래서 무덤에서 울며 애원했다.

엄마.
다음 세상에선 제발 날 엄마의 몸종이 되게 해 달라고...
그래야 그 죄를 조금이나마 갚을 것 같다고...
부디 왕생극락하소서...
상품상생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