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보내는 일요일
낮익은 공간에 긴 햇살이 비추고 있습니다.
가만히 이 구석 저 구석을 둘러봅니다.
손때 묻은 가구들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아이들이 놀다간 자리엔 아직도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남아있었지요.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하나.... 더운 날씨에 그냥 적당히 지내?
약간의 갈등 끝에 나의 눈길을 확 잡아끈건 씽크대였습니다.
무어 그리 맛난걸 해 먹길래 기름때가 이리도 많담?
중얼 중얼 때를 빼고 광을 내어 반들 반들 윤기나는 뽀얀 싱크대의
베이지색이 마냥 정겨웠습니다.
그 안의 그릇들은 모두다 밖으로 걸어나와 다시 차곡 차곡 제자리로
돌아갔습니다.
그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었습니다.
이런 점이 마음을 붙들어, 저런 점이 좋아서.....
모두들 제 나름대로의 구실을 갖다 붙이고 그 자리에 가지런히 놓여졌습니다.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씻기에 시원한 물 한잔보다 더한게 있을라구요....
다음은 바닥 청소.... 같은 바닥이건만 주방은 왜 그리 때가 잘 타는지....
박박 문지르고 닦고 하다 보니 어느새 나무결이 살아나고 있었습니다.
나를 좀 보아달라고 막 손짓하듯이 모든 물건들이 제 색을 내며 살아나는 것이었습니다.
자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그런지 내 손길이 닿는 곳마다 자꾸만 달라지는게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재미가 쏠쏠하였습니다.
누구나 그러할진 모르지만
처음에 마음 먹기가 어렵지 마음만 먹고 달려 들면 나로 인하여
달라지는 부분이 나를 즐겁게 하고 있었습니다.
생활의 윤기를 더한다는 것
그건 아마 엉덩이를 조금만 덜 바닥에 붙이고 사는 일
아닌가 싶어집니다.
고여있는 물처럼 재미없는 게 또 있을까요?
식탁의자 커버가 천이라 더러움이 쉽게 타더군요.
의자를 거꾸로 놓고 드라이버로 나사를 풀러 새롭게 바꿀수 있을까
한참을 궁리해 봅니다.
문 밖에만 나가면 얼마든지 새로운 것을 접할 수 있는 우리들이지만
생활속의 작은 생각이 변화를 줄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나마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아서이지 하루 종일 집에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지금보다 무척이나 바쁘게 살지 싶습니다.
눈에 보이는 걸 가만히 두고 보질 못하는 성격이니
늘 스스로를 달복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하루 종일 얼마를 걸어 다녔을까?
그것도 집안에서만....
그러다 보니 저녁때가 다 되어서야 청소에서 놓여났습니다.
반짝 반짝하니 더 새롭고, 시원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마음에 쌓인 먼지마저 어디론가 풀풀 날려 보내고 나서야
편해지는 걸 보니 천상 어쩔 수 없는 아줌마인 자신이
그때서야 보입니다.
전에 없던 새로운 기운이 감도는 집안에서 산뜻한 향기를 맡아 보는
맛....
나의 손길을 기다리며 뽀얗게 마른 빨래를 거두는 맛....
청소가 주는 그 맛때문에 오늘도 나는 하루 종일 청소에 열을 올렸나 봅니다.
마파람에 살랑거리는 나뭇잎들의 작은 움직임이 몹시도 사랑스럽군요.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내 사는 공간을 치우는 일로 하루를 보내는 것도 내게 허락된 여유를 마음껏 즐기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추억이 묻어 있는 사진첩을 한참이나 멀끄러미 들여다 보다
웃음 한번 웃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기도 하면서.....
틈새에 만들어 먹는 열무냉면 한 그릇도 참 맛나게 다가오는 하루
그런 하루였습니다.
내 삶이 그곳에서 반짝 반짝 빛고운 향내를 머금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