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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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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1 (한잔 따라봐 )


BY 잡초 2003-01-28

사람을 상대로 하는 직업이다보니 별의별 사람들을 다 만나본다.
적게는 수십명에서부터 많게는 백여명까지
난 홀안의 여기저기를 정신없이 누비고 다녀야 한다.

식당의 문이열리면
" 어서오세요 "
인사와 함께 쪼르르 물컵과 주문판을 가지고는 손님을 좌석에 안내한다.
" 안녕하세요? "
한 귀퉁이에 무릎을 꿇고 컵과 물병, 주문판을 손님의 앞에 내어놓는다.
" 주문하시겠어요? "

" 양념으로 드릴까요? 차돌로 드릴까요? "
" 후식은 뭘로 하시겠읍니까? "
손님이 칼국수라도 시킬라치면 난 다시 물어봐야 한다.
" 매운맛으로 드릴까요? 보통맛으로 드릴까요? "
원하는 맛에 체크를 하고
" 면은 굵은것으로 드릴까요? 가는면으로 드릴까요? "
이때쯤이면 손님들은 슬슬 짜증이나 농담이 나오게끔 되있다.
뭐가 이리도 까타로우냐는...
" 죄송합니다 "

무릎을 펴고 일어나 카운터로 가서는 주문한 전표하나를 떼어주고는
다시 주방과 홀의 사이에 있는곳으로 가서 주문한 상을 차린다.

이것저것 손님상에 놓아주고 난 다시 인사를 한다.
" 맛잇게 드시고 필요한거 있으면 말씀하세요 "

한 귀퉁이에 서서 홀안의 이곳저곳을 눈동자 돌리기에 바쁘다.
뭐 필요한것은 없나~ 새 손님이 오시는것은 아닌가?
고기가 너무 타게 익지는 않나 칼국수 국물이 넘치는것은 아닌가...

잠시전 내가 받은 손님의 고기가 점점 줄어가고
난 다시 그 테이블로 닥아가 손님에게 말을 붙인다.
" 후식 넣어드릴까요? "
승낙이 떨어지면 주방에 대고 큰 소리를 친다.
" 20 번에 후식 주세요 "

후식이 날라져 가고 그 후식그릇까지도 다 비워갈무렵...
다시 주방쪽으로 돌아와 자스민 차를 준비한다.
" 손님. 차 나왔읍니다. 지금 물 부었으니 조금후에 차가 우러나면 드십시요 "

그 중간중간에도 난 몇번을 손님에게 불려가야 한다.
" 여기요. 상추주세요. 물 주세요 반찬 주세요.... "

내가 받았던 테이블의 손님이 하나씩 둘씩 일어나고
계산을 하러 카운터로 몸을 돌리면 빠른 동작으로 난 끝인사를 한다.
" 맛잇게 드셨어요?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요 "

이렇게 같은 하루를 보내던 어느날.
해거름에 들어오신 남자손님 몇분이 한잔술이 얼큰들 하신거 같다.
나이어린 알바생들을 보내는거 보다 내가 가는게 나을듯 싶어
그 테이블로 가서 평시와 다름없이 주문을하고 상을 보아주고...

'딩동! '
소리와 함께 전광판에 숫자가 들어온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내가 받은 손님의 테이블번호.

" 네 손님 부르셨읍니까? "
" 여기 술, 소주한병 갖고와요 "
" 네 손님 기다리십시요 "
소주잔과 한병의 소주를 손님앞에 다소곳이 내려놓으니
약간은 맛이간듯한 한분의 손님.
" 술 한잔 받아봐 "
" 네 손님. 전 술을 못 합니다."
" 내숭은... 한술하게 생겼구먼 "
" 죄송합니다 손님. 전 지금 근무중입니다. 맛잇게 드십시요"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서려는데 문제의 그손님
처음부터 반토막의 말이더니 급기야 막나가기로 작정을 했나보다.
" 야! 술 한잔도 못하면서 뭐하러 이런데 있어? "

잠시... 현기증이 난다.
외면한채 잠시 난 호흡을 가다듬어본다.
생각같아서는 귀뺨이라도 올리고 싶었고 여기가 무슨 술집이냐고 악이라도 쓰고 싶었지만...
그 보다 앞서 명치와 목울대가 먼저 아파온다.

아무말 없이 목레로 다른손님들에게 인사를 하고
난 식당밖으로 잠시 나온다.
뱃속까지 시원하도록 찬 바람이 나를 맞고
눈물은 나를 잠시는 따뜻하게 해 준다.

잠시
밤 하늘을 바라보던 나는 큰 심호읍과 함께 화장실의 거울을 보고
꼭꼭 눈물 자욱을 지워버린다.

마지막까지 그 테이블의 서빙을 마칠때쯤
함께 했던 일행중의 한분이 내게 말을한다.
" 아주머니 죄송합니다. 원래는 이 친구가 그렇지 않는데 오늘은 술이 좀 많이 취했네요.
아주머니가 이해 하셨으면 해요 "

좀 전의 나는 어디로 보내버렸는지 생긋 미소까지 지으며
나 역시도 손님의 사과말에 맞받아 응수한다.
" 아뇨, 괜찬습니다. 다음에 오시면 한잔 따라는 드리지요 "

조금씩 조금씩 나는
세상과 타협하며 사는 지혜를 배워가고
조금씩 조금씩 나는 팔색조가 돼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