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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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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와 포도주는 묵을수록......###


BY 장현숙 2000-12-08

"친구와 포도주는 묵을수록 좋다." 는 서양속담이 있다.
아마도 깊은 세월 묵혀지면서 우러나오는 깊은 속 맛이 있다는 뜻일게다.
내게도 이런 오래 묵은 포도주 같은 친구가 있는데...

어린시절 공우원이셨던 아버지를 따라 이리저리 꽤 여러 곳으로
이사를 다녔는데 중학교 입학할 무렵 살게 된 곳이 대전 못 미쳐 에 있는 소읍이었다.
이사를 한 탓에 가까이 지내는 친구가 없기도 했지만 대전에 있는 학교까지 기차통학을 하느라 새벽같이 집을 나서고 해질 무렵에야 집에 돌아오곤 했으니 도통 친구를 시귈 틈도 없었다.

어느 날인가, 일요일 아침이었는데 마루에 앉아 있던 내게 누군가
웃으며 다가왔다.

"저어, 난 저 앞집에 사는데..."

그렇게 해서 알게된 친구,
까무잡잡한 피부에 선한 웃음이 참 예쁜 친구.
아들만 다섯인 집안의 고명딸이었던 친구가 집안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에가지 못했다 는 것을 알게 된 후 난 마음이 아팠지만 내색을 할수 없었다.
하여튼 그 친구와 가까워진 후로 학교를 쉬는 날이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 생활은 몹시도 바빠졌는데...

커다란 그릇 가득 빨래감을 이고 강으로 빨래하러 친구 뒤를 따라가면
참 재미있었다.
빨래는 빨아 자갈밭에 널어놓고 강물에 털썩 주저앉아 다슬기도 잡고
강가에 있던 땅콩밭에 몰래 기어 들어가 땅콩서리도 하며 해 지는줄도 모르고 신나게 놀다가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호되게 혼이 나곤 했
지만 도시에서만 살던 내게 그 곳 생활은 모든 것이 얼마나 새롭고
재미있었는지 모른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가슴이 뛸 정도로...

뽕나무밭에서 오디를 따먹어 까매진 입을 서로 바라보고 배꼽잡고 웃던-
친구가 싸가지고 온 보리밥에 강 둑에서 갓 캐낸 돌미나리를 강물에
훌훌 씻어 고추장 듬뿍 넣어 석석 비벼먹던-
커다란 가마솥에 불을 때서 밥을 하던 친구네집 부엌에서 쪼그리고 앉아 먹던 그 구수한 누룽지 맛을-
잊을수 없는 그 많은 추억들, 그리고 그 많은 추억들을 갖게 해준 친구가 있음이 세월 흘러 나이 들어갈수록 점점 더 소중해진다.

내가 늦은 결혼을 하고 아이 둘 낳아 키우며 바삐 사느라 친구를 잠시
잊고(?) 살때도, 어려움을 당해 세상 사는것이 힘겨워 아파할때도
그 친구는 예의 그 마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날 지켜 보아 주었다.
그림자처럼...

며칠째 몸이 아파 마음까지 축 처져있는데 친구가 전화를 했다.

"나여,별일 없는겨?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전화하는겨..."
느릿하지만 정겨운 친구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마음이 뭉클하면서
눈물이 났다.
문득 예전에 내가 친구하고 끔찍이도 어울려 다닐때 엄마가 하시던 말씀이 생각이 났다.

"그래, 친구란 좋은 것이지.나이들면 친구가 제일 그립다고 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