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눈에 덮힌 우리동네)
대전에서 볼일을 끝내고
길을 나서는 나를 보고 아는 이가 염려 섞인 말을 건넨다.
눈이 많이 온다는데 조심하세요?
옷깃을 털어야 될 정도로 눈을 맞아 본건 올 겨울 들어 처음인 것 같다.
남쪽 섬진강까지 갈려면
우선 주유소에 들려 기름부터 가득 채웠다.
어디서부터 얼마나 멀리서 쉬임없는 날개짓으로 바람을 가르며,
내 차창에 부딪힐까?
작은 몸짓이 모여 사람들의 마음을 행복하게도 하고
또 길을 나선 사람들에게는 부담을 주기도 하는 너의
여린 몸짓을 부딪치고 안으며 나선길을 재촉했다
느려지는 속도에 둔감해지듯 와이퍼가 뻑뻑소리를 내며 시야를 흐려놓는다.
살며시 갓길에 차를 세웠다.
와이퍼에 붙은 눈발이 얼음조각이 되어 나를 시험한다.
이런 날은 창가에 턱을 받치고 앉아 따뜻한 차 한잔을 놓고, 모락모락 오르는
김에 눈발을 녹이는 재미도 있는데
그리고, 흩날리는 눈의 자취를 따라 내 마음도 눈처럼 희어져야 하는데
미끄러운 눈길을 달린다는 건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는 작은 게임과도 같다.
게임은 즐겨야한다.
지는 것 보다 이겨야 하고 이기기 위해서는 신중해야한다.
이 빙판 길의 상대는 과연 나와 함께 남쪽으로 계속 달려가 줄까?
우리 동네에도 백설의 세상을 만들어 줄까?
빙판에 미끄럼을 탄 자동차와 마주보기도 하고
뒤꽁무니를 들이받고 찌그러진 모습들과 만나기도 하지만
이상할 것도, 짜증스러울 것도 없다.
3시간이면 도착했을 거리지만 8시간이 걸렸어도
눈이 주는 포근함과 아늑함이 나를 부드럽게 하나보다.
백설의 게임은 계속되고 있었다.
아름다운 세상은 덮어서 숨겨지는 것이 아니라 녹아서 드러나는
새로움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