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도 입 단속 하는 일이 쉽지 않다.
오늘, 내가 혀를 잘못 놀려 두 사람이 싸웠다고 한다.
사건의 전모는 이렇다.
요즘 나는 샌드위치 가게를 보러 다닌다.
아직 경험은 부족하지만 도와주겠다는 사람도 있고, 가게는 미리미리 봐 두는 것이 좋다는 사람도 있어서다.
가게를 소개해 주는 사람들(브로커)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은 나도 숱하게 들었다.
여기선 보통 일 주일 매상의 30배의 돈이 가게를 사고 파는 값, 가게 값의 10%가 브로커의 소개비로 알려져 있다.
브로커들은 소개비 많이 받기 위해 가게 매상을 실제보다 부풀려 말하는 것은 기본이란다.
또 소개비는 파는 사람이 부담하기 때문에 파는 사람과 짜고, 문제가 있는 가게를 속여서 파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세상에 떠 도는 소문을 다 믿는 것도 우스운 일이고,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는 심정으로 가게를 보러 다니기 위해 신문 광고를 보고 브로커라는 사람에게 전화를 하였다.
전화로 몇 마디가 오가고 직접 찾아오라는 말에 그녀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인상이 믿을 만한 사람으로 보였다.
난 사람에게 후한 점수를 주는 편이 아닌데 그녀의 인상은 사기꾼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하긴 사기꾼이 얼굴에 써 붙이고 다니지는 않지만…
소개해 주는 가게는 경쟁도 없고 단지 파는 이유가 현재 주인의 병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조건이 좋은 가게는 금방 매매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가서 보고 맘에 들면 빨리 결정하라고 하였다.
우리가 보는 앞에서 가게 주인과 통화를 하더니 하루만 더 자기가 보내는 사람을 위해 시간을 달라고 통사정을 하였다.
그리고선 우리에게 말했다.
가게 주인이 그 날 중에 사인하려 하는 것을 사정해서 겨우 하루만 연기하기로 했으니 가서 보고 흥미가 있으면 내일 중에 가부를 정하라고 하였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가서 본 가게는 제법 손님이 북적이고 있었다.
적어도 매상을 속이는 것은 아닌 것으로 생각되었다.
주인 남자는 초보자인 우리를 위해 미국에서 비즈니스 하는 요령에 대해 친절하게 강의를 해 주었다.
가게를 파는 이유에 대해서도 장황하게 설명하였다.
물론 브로커에게서 이미 들은 이야기였다.
자기 가게 선전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 가게를 나오면서 남편과 나는 그 남자가 수완 좋은 장사꾼임에 동의했다.
그리고 나는 내 일을 하러 가면서 남편에게 말했다.
“무슨 수를 쓰든지 이런 종류의 가게에 대해 아는 사람을 찾아내서 한 번 더 가게를 찾아가 보세요. 그리고 나서 그 브로커에게 우리 의사를 밝힙시다. 특별한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이 가게 하고 싶어요.”
내가 일하는 샌드위치 가게의 바쁜 시간이 지나고 한가한 시간이 되어서 궁금해진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하였다.
남편이 친구랑 같이 찾아가서 발견한 문제점은 이런 것이었다.
길 건너에 스타벅스 커피점과 길 모퉁이에 유명한 샌드위치 체인점이 개업을 준비 중이라고 하였다.
그 때서야 그 가게를 팔려고 하는 진짜 이유가 ‘아하!..’ 하고 느껴졌다.
남편이 약속대로 전화를 하여 그런 이유가 있어 우리는 흥미가 없다고 하자 그러면 다른 가게를 보여주겠다고 오후에 또 찾아오라고 하였단다.
일이 끝나고 남편과 함께 다시 그녀를 찾아갔다.
그리고 그녀와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앞 뒤가 맞지 않은 말이 많음을 알았다.
다시 팔기로 했다는 다른 가게의 주소를 받아 들고 집에 와서 그녀와 나눈 이야기를 곰곰 씹어 볼수록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아무튼 그녀 말의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접어두고 오늘 아침 우리는 다시 새로운 가게를 찾아갔다.
주인은 없고 종업원들만 일하고 있었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 나는 넌지시 가게를 팔려고 하는 이유를 물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브로커 그녀에게 속았음을 알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들은 이유는 이러이러한 것인데 사실이 아니냐? 나도 브로커에게 의심쩍은 일이 많아 그러니 솔직하게 이야기 해 줄 수 없겠냐?’
내 말을 종업원으로부터 전해 들은 가게 주인 여자는 브로커에게 쫓아가서 한 바탕 했다고 한다.
가게 주인 여자에게 당한 브로커 여자는 남편에게 전화해서 따졌다고 하고…
내가 찾아갔던 브로커가 지금 가게를 일 년 전에 소개해서 지금 주인이 가게를 샀던 것인데 장사가 되지 않아 손해를 많이 보았단다.
아마도 그 이유를 둘이 서로 상대방 탓으로 돌리고 있었던 것 같다.
가게 주인 여자는 브로커가 자기를 속여 소개를 하였다고, 브로커는 지금 주인이 경영을 잘못해서라고…
실상이야 나는 모르는 일이고 그저 브로커에게 들은 말을 내가 철 없이 그 가게 종업원에게 흘린 것이다.
그 말을 전해 들은 주인 여자는 ‘옳다 기회다!’ 하고 그 브로커를 찾아가서 화풀이 한 모양이고…ㅎㅎㅎ
그 브로커 여자에게 다시 가게를 소개 받기는 틀린 일이고 나도 그 여자가 미덥지 않아 그다지 아쉬울 것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녀가 집으로 전화를 해서 내게 따진다.
자기를 믿을 수 없다고 했다는데 그게 무슨 말이냐고?
이런 때는 사실대로 말 할 수 밖에 없다.
내가 느꼈던 대로 말하니 그녀는 화가 나서 어쩔 줄 모른다.
내 직설적인 화법에 남편도 옆에서 어쩔 줄 모른다…ㅎㅎㅎ
나는 타고 난 쌈꾼인가 보다.
남편이 옆에서 화를 내거나 말거나 그녀에게 속은 것 같아 불쾌했던 내 감정을 그대로 전달한다.
내 할 말 다하고선 그녀가 화가 나서 펄펄 뛰거나 말거나 맘대로 하라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남편은 몰상식한 내 태도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그런데 나는 기분이 좋기만 했다.
그 여자에게 속아서 가게를 샀던 여자에게 내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화풀이할 기회까지 주게 된 것 같아 노래라도 부르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경우에 따라서 이 세상 누구보다 더한 악녀가 될 수 있는 자신이 사랑스럽기 조차하였다…ㅎㅎㅎ
소리 내어 웃고도 싶은데 화가 나 있는 남편을 더 화 나게 할 것 같아 밖으로 나왔다.
혼자서 좋아하다 시간이 흐르자 조금씩 제 정신이 들었다.
내가 한 것이 철없는 유치한 짓임도 알았다.
혀를 잘못 놀려 그 여자 브로커를 기분 나쁘게 한 것이 결코 잘 한 짓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화가 난 남편의 화를 풀어 주어야 할 의무가 있음도 깨달았다.
그 여자가 잘못한 부분은 그 여자가 사과해야 할 몫이지만, 그 것은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고, 내가 잘못한 부분은 내가 사과해야 할 몫임도 알았다.
다시 남편이 있는 곳에 가서 그 여자 브로커에게 전화를 하였다.
그리고 그 여자에게 사과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죄송합니다…그저 미안할 뿐입니다... 제가 철이 없었습니다…”
옆에서 남편이 놀란다.
어쩌면 그렇게 납작 엎드려 사과할 수 있느냐고 기가 막혀 한다…ㅎㅎㅎ
하긴 나도 내 자신이 놀라울 만큼 저자세로 사과를 하였다.
자신의 교활함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고 한편 그 점이 내 장점일 수 있다는 생각도 한다.
아직 정리 되지 않은 자신에 대한 판단을 남편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내가 불여우인 것을 아직도 몰랐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