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집에서 아이 낳아 기르고 살림하고, 남자는 밖에 나가 돈 벌어 오는 것에 대해 불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결혼하면 누군가 아이도 기르고 살림도 해야 하는 것이니, 남편과 역할을 분담해서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아이 기르고 살림하는 역할이 내 것이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철없는 순진함임을 알았다.
맞벌이를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방향을 바꾸었을 때 남편은 날 무시하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모르고 철딱서니 없이 히히덕거리기나 하고…’
퇴근하고 돌아와 아이들과 장난치는 내게 남편이 한 말이다.
남편이야 일에 바빠 신문 볼 사이도 없지만 나야 집에서 시간이 많으니 신문 광고까지 샅샅이 살펴 세상 돌아가는 일이야 남편보다 훤한 데도 말이다.
그 뿐인가, 미장원에 가서 온갖 잡지며 주간지까지 다 훑는 나는 대한민국 뒷골목에서 일어나는 일도 다 꿰고 있는데…
시아버지에게 무시당하고 사는 시어머니에게 남편이 내게 그러면 같이 안 살겠다고 하자 시어머니는 그랬다.
‘네가 나가서 어떻게 혼자 먹고 살래?’
울 부모가 논 팔고 밭 팔아 대학까지 가르친 내게 울 시어머니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
집에서 살림하는 여자는 무능한 여자와 동의어라고 생각 하는 사람은 남편과 시어머니 뿐이 아니었다.
살면서 그런 사람을 참으로 많이 만났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같은 여자 중에, 그것도 전업 주부 중에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것도 알았다.
사회적인 통념에 세뇌라도 된 것인지 모르지만…
나는 그런 사회적인 통념에 굴복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남편에게 아이들이 자라고 남편이 은퇴할 때가 되면 역할을 바꾸자고 제안했다.
남편은 집에서 살림하고, 나는 밖에 나가 돈을 벌어 오기로…
남편은 농담으로 생각했는지 선선히 그러자고 하였다.
하지만 남편이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난 알고 있었다.
‘네가 무슨 수로 일하던 사람도 은퇴할 나이에 돈을 번다는 말이냐? 흥!’
남편의 속 생각이야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뻔했다.
비록 실없는 소리를 잘하는 나지만 결코 이 제안은 실없는 소리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내가 굳게 다짐한 것을 남편이 알았을까?
요즈음 남편은 살림을 한다.
빨래도, 청소도, 설거지도 한다.
남편은 살림 솜씨가 나보다 낫다.
가구 위에 먼지가 앉는 법도 없고 빨래가 밀리는 법도 없다.
하긴 남자라고 살림을 못하란 법도 없다.
나는 남편이 살림하는 것에 대해 미안해 하지 않는다.
그 대신 돈을 벌러 다닌다.
물론 지금은 시작이다.
돈은 벌러 다닌다고 하기 보다는 경험을 쌓기 위해 공부하는 중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하지만 머지 않아 남편의 돈 버는 솜씨보다 내 돈 버는 솜씨가 훨씬 나은, 그런 날이 올 것이다.
남편이 내게 가져 다 주던 돈보다 훨씬 많은 돈을 남편에게 가져 다 줄 것이다.
그리고 남편에게 이렇게 말하겠다.
‘여보, 살림하느라고 힘들지? 고마워! 내가 밖에 나가 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서…’
쉬는 날이면 가끔씩 설거지도 하고 요리도 할 것이다.
그럴 땐 남편에게 이렇게 말하겠다.
‘당신도 하루쯤 쉬는 날이 있어야지. 그 동안 힘들게 했으니까 오늘은 내가 할게.’
나는 결코 이런 말은 하지 않겠다.
‘집 구석에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식구들 먹여 살리는 것이 쉬운 일인 줄 알아?’
나는 돈 버는 재미가 살림하는 재미보다 더 좋다는 것을 남편에게 보여주고 싶다.
흰머리가 늘어나고, 시력이 떨어지고, 두뇌회전이 느려지는 아줌마도, 집에서 살림만 하던 아줌마도, 남자 못지않은 경제적인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
남들은 모두 나를 무능력한 사람 취급해도 나마저 나를 그런 사람이라고 포기한 채 살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