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하얀 눈이 온 대지를 뒤 덮을때 오후 4시 올 들어 가장 춥다는 그날
올해로 77세 되신 내 아버지께서 이승과 저승 의로의 아~~주~~ 긴~~ 이별을 하셨다,
살아 계실때 문학을 좋아하고, 꽃을 좋아하고, 매섭지도 않으셨는데 웬 날씨는 그리도 추운지...
페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은지 8개월 만이다.
아버지의 죽음은 예고 돼 있엇건만 그래도...
그렇게!
허망하게 가실줄은 몰랏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이상 하시다는 전갈을 받고도 설마....
며칠 전에 가뵈었을때 아직은 더 사실것 같았는데....
믿기지 않은 마음으로....
엄마!
무슨일이 있을것 같으면 밤중이라도 전화하셔요.
하고, 가게문을 닫고 가기 뭣해서,
미적 거리며 설마 오늘 밤 안에야 돌아가실려구?
하면서도 6남매 자식들이 뿔뿔이 훝어져 살고 있으니 맏딸인 나에게 엄마가 의지를 하시는것 같아서,
이젠 사후의 준비를 해야 겠단 생각에 이곳 저곳 전화해서 장례 절차에 대해 물어보고,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물어 보고 다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엇더니 곧 운명 하실것 같다는
엄마의 목소리는 곡소리로 바뀌어 있었다.
부랴부랴 가게 문을 닫고 여수에 사는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울진 사는 남동생이랑 이곳 저곳
전화해서 알리고 빨리 올라 오라고 하고 남편과 함께 가게를 나선 순간 도로위에 눈은 빙판을 이루고
마음 급한 우리의 발길을 더디게 했다.
2시간 반을 걸려 집에 들어선 순간 이미 고인이 되신 아버진 집에 계시지 않고 병원으로 이송
해 가셨고 난 그렇게 허망하게 이승을 떠나신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불효한 딸이 되고말았다.
그래도 다행히 고모님과 큰남동생과 어머니가 미지막 숨 거두시는 순간을 지키 셨다니...
다시 영안실로 갔을땐 그 곳 엔 아버진 계시지 않고 사진 만이 큰 사위와 큰 딸을 보고 계셨다.
이곳저곳에 아버지의 부의를 알리고 뜬눈으로 밤을 세우고 아침부터 밀려드는 조문 객들
맞느라 정신이 없었다.
오후 5섯시에 입관식이 있었다.어쩌면 그리도 평온한 얼굴인지...
그곳에선 암이란 병이 아버질 괴롭히지 않는지 아주 평온한 모습으로 주무시는듯 깨끗한 모습으로 누워계셨다.
자식들이 저승으로 가시는 아버지께 해 드릴수 있는건 명주옷 한벌 입혀드리는것 밖에
없었다.
평소때 돌아가시면 화장 시키지 말고 고향에다 묻어 달라는 유언에 따라 3일째 되는 밤 1시에 장지인 전라도 고흥으로 출발했다.
그곳에 도착해서 고향인 쑥섬 앞에 차를 세우고 아버지께 잔을 올리고, 다시 고향 친지들
이 기다리시는 식당에 도착해 아침을 먹고 장지로 향했다.
그곳엔 이미 포크레인이 와서 땅을 파고 내 아버지가 누우실 석관을 만들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지관이라는 분의 지휘아래 하관은 시작되고 어머니와 형제들과 자식들의 통곡을 뒤로 한체
내 아버진 그 추운 겨울 날 홀로 흙으로 돌아 가셨다.
어째 그리도 매섭게 바람은 몰아 치는지...
한시도 당신 곁에 머물지 말고 빨리 돌아 가라고 그러시는지....
산자들은 살기위해 얼어 붙은 땅속에 아버지 홀로 남겨 두고 따뜻한 곳을 찾아 돌아왔다.
7일날 삼우제를 지내기 위해 그곳에 갔을때 아버지 묘소 주변엔 많은 까치들이 몰려와 있었다.
그래도 외로우셨든가... 까치들을 불러 모아 같이 놀고 계시니...
아버지!
이제 병마에 시달리지 마시고 극락 세계로 가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