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삼촌 " 엄마 "
그럼 나도 " 엄마 "
" 할머니지 왜 엄마야"
" 삼촌도 엄마라고 하는데, 왜 난 할머니야"
" 니 엄마 며칠있다 오쟎아"
" 아앙~~~~~~~~~~~앙 "
나의 어린시절을 보냈던 외갓집은
마당 넓은 초가집에
마당 가로질러 가야만 했던, 정말 무서웠던 뒷간에
나무로 불을 지피던 정지(부엌)에
정지건너 오리들과 닭들이 살던 조그마한 외양간에
정지건너 있던 조금한 방에는 언제나 메주가 주렁주렁했고
마당옆에 있던 외양간에는 다큰 남정네가 없었던 탓일까
항상 비어 있었다. 정지 넘어 있던 조그만한 외양간에는
어느해는 닭들이 그리고 오리가, 어느해에는 백구라 불리던
우리 개의 강아지들의 집터가 되곤 했다.
마당 한켠에는 언제나 조그마한 꽃들이 만발했고,
집 뒷켠에는 펌프질해야 물이 나오는 수도가 항아리가
여름에는 산딸기가 오이가 옥수수가 간식거리 할만큼 열렸고
그래서 여름에는 뱀들도 있었다.
그리고 대문없는 대문이 있었다
조금한 대문을 지나면 조금한 텃밭이 있었는데
그 텃밭 한가운데 외조부의 묘가 있었다.
그곳이 얼마나 좋은 자리냐면, 외조부 묘를 등지고 있노라면,
한도 끝도 없는 드넓은 바다만 보일 뿐이었고,
외조부 묘 뒤로는 감히 넘볼수 없는 산이 있었다.
큰 대문을 나가노라면, 큰배는 아니구 그래도 식구들의
식비를 벌정도의 작은 배들의 선착장이어서,
동생과 내가 가는 해이면,
물고기 잡이를 나가셨던 어르신들이 애들 먹이라고,
꽃게며 낙지 그리고 갖은 생선을 주셨고
한 여름에 비가 무수히 내리기 시작하면
그 선착장 둑으로 바다가 넘쳐 해파리가 넘실거리곤 했다.
그것을 막 잡아서 묵처럼 잘라 먹는 맛은 지금도 침이 넘어간다.
해가 떨어질무렵 동네 꼬맹이들과 낮에 만들었던
집집마다 널려있던 낙시줄로 대충 대나무에다
얼기설기 엮어 낙시대를 만들어 낮동안 뻘밭을 걸어다니며
깡통에다 잡아두었던 갯지렁이를 미끼로 써서
선착장 끝에 앉아 낙시를 하고 있노라면, 그래도 제법
물고기가 걸리곤 했는데, 그걸 고추장도 아닌 집된장에
찍어 먹노라면, 아마 내가 이렇게 커서도 된장에 생선 찍어먹는
맛을 알게 해준것이 아마 그때였으리라.
한여름 지나 엄마가 오는걸 알고 있었기에
모래밭에 앉아 엄마 무덤 만들어 놓고 엉엉 울던 그때
지금 내 큰애가 그나이가 되고 보니,
지금 큰애가 보고 느낀것이 나중에는 추억이 될텐데
큰애는 외가를 가도 서울이고 친가를 가도 서울이다
나 어렷을적 친척집에 간다는것은 무지 먼곳을 가는
마음이 술렁거렸던 기억이건만,
큰애는 그런 기억이 없을것 같아 오늘은 웬지
풍족하지 못해 들이며 산이며 바다며 먹을것을
헤매고 다니던 그 어렷을적이 지금 큰애가 사는
뭐든지 웬만큼 풍족한 생활보다 더 행복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큰애가 내 나이가 되서 어렷을적을 생각하면,
음.......
무슨 월드, 무슨 랜드, 무슨 공원 기껏해야 그것뿐일것 같으니......
우리애들에게도
자연과 벗삼아 자랄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