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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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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


BY baramandgurm 2002-12-31



이상한 일이다. 짚어보니 꼭 백 일 씩이다. 내가 종로의 보석타운에 사무실을 얻어 그 곳을 드나드는 중상인과 사업자들에게 차만 대접하면서 그들에게서 장사하는 법을 배우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백 일 동안 그 일을 계속하자 실로 우연찮게 귀금속 제품을 대여해 주는 사람을 만나 별 밑천 없이 장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작년에 어느 사찰을 찾았다가 발심하여 남편에게 백 일 동안 아침마다 절을 하였는데 힘들던 가게 일을 그만두고 직장을 옮기게 되었다. 내 일생에 없던 참으로 좋은 조건의 일터였다. 정말 내가 이렇게 편안해도 되는 것일까. 믿기 어려울 만큼 일거리는 쉬웠고 전의 일터에서 받던 보수의 갑절이나 넘는 대우도 의아했다. 나는 남편에게 삼배씩 하던 것을 백팔 배로 늘였고, 혹시 그러한 일련의 변화가 기도의 효력이 아닐까 하면서 새벽마다 사경을 하고 잠을 줄이기 시작했다. 경전을 더 많이 읽고 익히고자 했다. 이제는 참다운 불제자가 되어 혼돈 없는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식사의 양도 줄이고 만나는 사람들도 절제를 했다.

새 직장으로 옮긴 지 두어 달쯤 되었을 때, 친정 어머니께서 돌아 가셨다. 나는 어머니를 위한 지장 기도를 올렸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지장경을 두 시간 동안 읽어 드리는 일이었다. 한 달 남짓 지나자 내 몸은 쇠약해지고 정신마저 흐릿해져 기도를 중도에 그만 두지 않을 수 없었다. 직장 일은 안정되고 간단했으나 휴일이 없다는 것이 조금 문제인 듯 했다. 백 일 동안은 휴일이 없다는 사실조차도 내게는 너무나도 적절한 조건의 도장과도 같다고 감사했었는데 욕심이 찾아 든 것이다. 나는 파트너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휴일을 정해 서로 교대로 쉬자는 제안을 하게 되었고 그 하루를 알차게 보내기 위해 불교 대학에서 금강경 강의를 들어 볼 계획을 했다.

그러나 공교롭게 불교 대학 개강 하루 전날, 본사 회장의 호출을 받았다. 그리고 그 다음 주부터 경기도 오산에 있는 본사로 출근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새벽 6시에 집을 나서야 했다. 다행이 남편이 재택 근무를 하면서 어느 정도 가사 일을 도와주므로 그 또한 시기 적절하게 내게 알맞는 조건처럼 느껴졌다. 한 때, 새벽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청소부라던가 신문이나 우유 배달하는 사람들을 존경하며 부러워했었다. 게으른 자신이 안타까워 젊을 때 군대를 자원했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질책했었다. 나는 이제야 원하던 삶의 패턴을 찾은 것처럼 뿌듯하고 기뻤다 신선한 아침에 일어나 기도를 하다가 집을 나서는 일은 그처럼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그 또한 두어 달이 지나자 불만이 일기 시작했다. 오산으로 가면서 몸이 고단하다는 핑계로 점차 사경과 기도를 그만 둔 터였다. 어쩌면 기도 또한 아상을 키우는 집착에 불과한지 모른다는 변명과 함께, 생활에 열중하는 것 이상의 기도가 있는가 하면서 나의 태만을 합리화시키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또 문제가 생겼다. 회장이 내 업무 패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회사도 경제적으로 어려워 보수가 두어 달씩 체임 되었다. 또 직장을 옮겨야 했다. 짚어보니 백 일이었다.

미국의 로스앨라모스 국립 연구소의 몇몇 과학자들은 다년간 하루 26시간의 생활을 시험하고 있다고 한다. 시간이 하루 두 시간씩 늦춰지는 것을 말한다. 24시간이 하루라는 개념으로 고착된 일반인에게 그들의 생활은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을 열면 시간의 주기적 개념은 다양하다. 우리 풍습에 사람이 태어나면 이레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이레, 두 이레, 세 이레를 통해 삼신께 감사의 예를 올리고, 사람이 죽으면 이레부터 일곱이레에 이르기까지 이레 재를 올린다. 주역에서는 삼이라는 숫자를 통해 12간지마다 삼재가 들고난다고 하고 개인의 운세가 5년마다 곡선을 그리면서 바뀐다는 이론도 있다. 불교에선 우담발화가 삼천 년마다 핀다고 하고 일부 과학자들은 지질대가 1억 5천년마다 크게 자리 바꿈을 한다고 추정한다.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는 말로 물리의 불확정성이나 우연을 인정하지 않았고, 스티븐 호킹 또한 모든 것은 이미 결정되었다는데 의견을 같이하지만 우리는 무엇이 결정되었는지 결코 알 수 없을 것이기에 결정 그 자체를 믿을 수 없다는 이론이다.

어떤 변화가 엄밀한 법칙에 의해 주기를 갖는다해도 단순한 한 사건의 변화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온 우주의 무수히 많은 고유의 존재가 다 그 고유의 시공을 인식하고 있으며 그 엄청난 개체들의 변화가 개체로서의 주기를 갖는다면 결국, 백지에 무수한 원을 그려 넣었을 때 결과 적으로 암흑처럼 검은 도화지만 보여지는 것과 같을 터이다. 그 하나하나 원의 형태를 다시 찾아내어 재현하고 이해하기에는 우리의 인식의 범주로선 거의 불가능하게 여겨진다. 삶 또한 그와 같은 카오스가 아닌가.

그러나 나는 믿는다. 아직은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여름에는 태양이 뜨거우며 가을에는 열매가 익는다는 것을, 우리네 생활의 변화 주기가 하루이던 백 일이던 그것은 묶어진 시간의 개념이 아닌 순간의 연속일 뿐이라는 것을.
공부가 깊어지면 순간이 영원이고 영원이 순간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