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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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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2.


BY 향초 2002-12-29

[터무니 없이 무서웠던 꿈]


어릴 적
초등학교에 갓 입학해 다니던 어느날
초저녁녘 낮잠을 자다가
터무니 없이 무서운 꿈을 꾼 적이 있었다.

터무니 없이 무서운 꿈..
객관적으론 무서운 꿈이 아닌데도
그 때 내겐 그 어떤 공포에도 비길 수 없는
고립감과 추락감을 가져다준
무서운 꿈이었다.

초저녁 무렵이면
외숙모가 집으로 돌아오셨다.
집이라는 게 그 땐 정확히 말해서
외삼촌 집이었다.

어른들 일이니
어린 나로선 왜 그랬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그 때 우리 가족은 외삼촌 집에서 살았다.
일곱살에 짐을 옮겨 초등학교에 입학해 다니다
봄에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얼마를 살았을까...
창신동 골목 시장이 가까웠던 그 큰 한옥 기와집에서.
엄마랑 매운 떡볶이를 봉지째 사와
사촌 동생들과 후후 불며 먹던 여름.
시장 골목 화로에서 탁탁 튀는 군밤 냄새가 고소하게 풍기던 겨울.
정든 우리 동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마냥 신기하기만 했던 장난감 자동판매기.
동전 얻는 날이면 골목시장으로 달려가
빨간 돼지를 굶기던 어느날들.

'무수'일까..
'우수'일까..
내내 헛갈리던 골목 한복판
동그란 맨홀 뚜껑에 새겨진
세모가 아래 위로 겹쳐진 별모양의 서울특별시 마크.
그 위에 쪼그리고 앉아
별모양을 따라 그리고 있던 어느날.

꼬까시나나~~
라고 따라부르던 고무줄 노래.

손바닥만한 간판을 볼 때마다
여인숙이 뭐야? 물으며
내내 궁금하기만 했던
동네에 하나 뿐이던 문화여인숙.

새벽밥 먹고 집에서 나가
동대문에서 성남까지
육년 개근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했던 우리 언니.
오고 가며 멀미 때문에 얼굴이 쏙 빠져
어린 내게도 안스럽게만 보이던
우리 언니.

엄마는 외삼촌댁 살림을 도맡아 하셨다.
그게 우리 식구가 창신동으로 간 이유였다.
우리 식구까지 함께였으니
작은 살림은 아니었다.

어린 사촌 동생 남매 둘과
역시 어렸던 나는
사이좋게 잘 지낼 때도 있었지만,
괜히 그 모든 것들이 귀찮아질 때도 있었다.

초저녁 무렵이면
나는 까닭 모르게 집안을 서성거렸다.
엄마 심부름에 종종거릴 때도 있었지만
쉬이 피곤해지는 난
그 때나 지금이나
울화가 금방 치미는 체질에다
설움도 쉬이 타
작은 노여움에도 가슴이 복받쳐오르고
목구멍이 조여오고
금새 눈물이 뚝뚝 떨어져버리는
양은 냄비다.

외숙모는 그 시절 내게
그리 편한 대상이 못되었다.
어렸어도 그 때 난
외삼촌 집에서
우리 가족이 큰 소리 내면서
살 수 있진 않단 걸 알고있었다.

동생들과 사이좋게 지내지 못한 날은
더더욱 초저녁 무렵이 다가오면
가슴이 답답해지곤 했다.

초저녁 무엇을 하다 그랬는지
따뜻한 방바닥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
말 그대로 깜빡잠이었다.

팔각 성냥이 있었다.
방 한 구석 어느 곳엔가
분명히 팔각 성냥이 있었을거다.
아마도 외숙모의 화장대 어디 쯤이었을까..
아니 팔각이 아니라 동그란 철통에 들어
떨어뜨리면 양철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는
그 통성냥이었을지도 모른다.

분명 잠이 들었는데
난 깨어있었다.

외숙모 화장대 위에 놓인
성냥 통을 어쩌다가 떨어뜨렸다.
찰그락~~~
성냥이 이리저리 흩어져
성냥통 안에서 질서정연하던
원래의 모양새를 갖춰놓을 수 없었다.
없었다기 보다는 없을 것 같았다.
방바닥 가득 흩뜨러진 성냥 알갱이에
나는 그만 주눅이 들고 말았다.

꿈에서 나는
울음을 터뜨려버렸다.
어떡하지??
어떡하면 좋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서
흩어진 성냥 알갱이들 위에
눈물만 하염없이 뚝뚝 떨어뜨렸다.

한 개비 두 개비
줍기 시작했으면
금방이었을텐데...
난 시작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겁만 잔뜩 집어먹고 서있었다.

꿈 속 조명은 어두워지고
방 구석엔 나와 성냥 개비들만
하이라이트가 비추고 있었고
방바닥과 함께 내 몸은 점점 깊은 곳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그렇게 터무니없는 두려움 속에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공포 속에서
하염없는 눈물만 뚝뚝 흘리며
흐느끼다가 흐느끼다가
잠에서 깼다.

주위를 둘러봤다.
성냥은 없었다.
화장대 위를 봤다.
성냥이 말짱했다.
한숨이 나왔다.
얼마나 다행인지...

엄마 외숙모 왔어?
아니.
다행이다.
왜?
아니야.

벌써
이십 년 전의 이야기다.

이십 년이면 잊혀질 법도 한데
터무니 없이 무서웠던 그 꿈의 기억은
퍼즐 조각처럼 딱 맞다.
앞 뒤 순서도 틀림이 없이
그대로다.

나중에
엄만 그게
키 크는 꿈이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