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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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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카메라와 동그란 밥상....


BY [리 본] 2002-12-28


초등학교 삼학년 무렵 눈이 몹시도 펑펑 내리는 날 
막내오빠가 손에 쥐어질락말락하는 카메라를 가져와 
사진을 찍어 준다고 나를 밖으로 불렀다.
찬것으로 말하자면 얼음하고 재판해도 이길 만큼 쌀쌀한 오빠라 
오빠들 셋중에서 막내오빠를 젤로 무서워했던 나였지만
사진을 찍어 준다는 바람에 마냥 즐거워
강아지를 끌어안고 정거장 앞 빨간우체통과 큰나무
그리고 우리 가게앞.. 
정거장 마당이 좁다커니 누비면서 
갖은 폼을 잡고 눈사람이되어 사진을 찍었다.
장난감 같은 조그만 사진기로 찍은 사진이 나왔을 때...
형체만 뿌옇게 보이는 이상한 아이가 사진속에 있었다.

눈이 많이 오면
눈이 많이 내린 그림만 보아도
내 어린 시절 장난감 같은 사진기와
거기 눈사람처럼 하얗게 질린 한 아이가 떠오른다.

강아지..
빨간 우체통..
넓은 정거장 마당..
늘 나를 애타게 부르시던 할머니의 목소리..

아침 잠자리에서 뭉기적 거리면 오빠들이 
"옥아! 눈많이 왔다 빨랑 나와 봐라~ " 외치는 소리를 듣고
내복바람으로 졸린눈 비비고 마당을 보면
정말 거짓말처럼 장독대에 눈이 소복히 내려 앉아 있었다.
사방천지가 온통 하애서 
시린눈으로 눈싸움도하고 
연탄재를 속에 넣고 둥글둥글 굴려 
눈사람도 멋드러지게 만들어 집앞에서 세워 놓고 
강아지와 함께 뜀박질도 하면서 개처럼 천진난만하던 시절....
60년대는 정말 눈이 무섭게도 많이 내렸다.

겨울의 낮은 살처럼 빠른지라
저녁시간이면 잽싸게 들어와 식사준비 거드는 일을 해야했다.
삐걱거리는 둥근 나무상을 펴고 
쟁반으로 밥과 찬을 나르는 것은 유일한 여자인 나의 몫이었다.
반찬은 남루해도 온식구가 둘러 앉아 먹는 것은
가족의 의미를 다져주는 끈끈하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온식구가 둘러 앉아 밥을 먹던 정겨웠던 시간들
동그란 밥상을 펴고 접을 때 나는 상다리의 삐걱거림...
그 서툰 삐걱거림 소리마져도 다신 들을 수 없는 
우리의 잊혀지는 소리가 되어 버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