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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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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


BY 잡초 2002-12-24

며칠전부터 식당안의 공기가 이상했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다가도 내가 들어가면 어색해 하고
사장부터도 내겐 농담도...눈길도 피하는거 같았다.
그냥 무시하려해도 무언가 있는듯 하여 찜찜해 있었는데
퇴근시간도 되기전 사장이 나를 보자고 한다.

" 아주머니 옷 갈아입으시고 요앞 블랙조끼로 오세요 "
내가 일하는 식당의 맞은편에 있는 생맥주집 이름이다.
직감적으로 중요한 할말이...그것도 아주곤란한 말이 있는거 같았다.

눈인사로 직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블랙조끼의 문을 밀고 들어서니
한쪽 귀퉁이에 사장이 담배를 물고있는게 보인다.

" 오늘이 벌써 한달이 되었네요. "
" 그래요. 그렇게 됫네요. "
마주 대답을 해주니 사장은 양복 안 주머니에서 봉투를 내밀어 나를 준다.
" 수고하셧어요 "
" 감사합니다 "
" 한번 열어보세요. 초보라고해도 액수는 똑같아요. "

십만원권 수표 열두장.
내가 한달내 일하고 벌은 참으로 소중하고 값진 돈이었다.

" 많이...힘드셨지요? "
" 아뇨 덕분에... 망서리지 마시고 하실말씀 있으면 하세요 "
" 저기... "
" 네.. "
".... "
" 힘든얘긴가 본데...저 괜찬아요. 들을준비 되있고 또한 무슨얘긴가도 대충 짐작이 가니까요 "
".... "
" .... "

마른침을 삼키던 사장이 한숨과 동시에 어렵게 말을 꺼낸다.
" 오늘부로 그만 두셨으면 해서요 "
예측은 하고 있었지만 가슴한켠이 서늘해온다.
" 해고...인가요? "
" 결론은 그렇게 되네요 "

사장이 미리시켜놓은 소주잔을 단숨에 목구멍으로 털어버린다.
빈속에 소주가 내려가니 내장부터 싸아한 느낌이 온다.
마주앉은 사장도 급히 소주잔을 비우고...
내 비워진 잔속에 가득 다시 소주를 채운다.
금방 소주병은 바닥이 나고
한병만더요! 사장의 목소리에 난 지그시 사장을 바라본다.

" 이유를... 물어봐도 ?튿楮? "
" 그냥... 알지말고 가셨으면 합니다만 "
" 아뇨. 어차피 나는 사장님 알다시피 돈을 벌어야 되고
다시또 다른집을 가게 될텐데 내 문제가 뭔지 알고 싶어서요. "
" 말씀 드리기가 곤란합니다 "
" 절 도와주신다고 생각하시고요. 알고싶네요 내가 해고당하는 이유를 "

한참을 소주잔을 내려다보며 담배를 뻐끔거리던 사장의 입에서 나온말은
" 세가지가 있어요 "
" 그럼 첫번째부터 설명을 해 주세요 "
" 첫째는 인원감축입니다. 겉보기에는 장사가 잘 되는거 같아도
남는게 없어요. 그래서 인원을 줄이자는게 삼십프로구요 "
" 네..그랬군요 "

" 두번째는.. 아주머니의 성격이예요 "
" 제 성격이 좀 모나긴 하지요 "
" 아뇨, 모나기 보다는 다른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를 못한다는데 있어요.
여긴 서비스업입니다. 일은 참 열심히 잘 하실려고 노력하는거 압니다.
밝고 명랑해야 하는데 아주머니의 얼굴에는 그늘이 있어요.
그리고...자존심이 참 강하시구요. 휘는 성격이 아니라 부러지는 성격이더라구요. "
" 네 인정합니다 "
" 그성격이... 세상을 살아가시는데 큰 장애가 될겁니다 "

전에는 참 밝고 환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던 나였다.
소리내어 까르르 잘도 넘어가고 농담도 재치있게 잘해 나와 있으면 시간가는줄 모르겠다고
그렇게 평을 받던 나였는데.
지금 내가 무슨 기분으로 웃음이 나오겠는가?
그냥 최선을 다해 죽어라 일만 열심히 할 밖에...
동료들과도 그랬다.
모두가 전날의 남편과 자식얘기들인데 난...할말이 없었다.
아이는 거의가 자는 모습만을 봐야하고
남편이라는 인사는... 내곁을 떠난지 벌써 한참전.
그네들의 행복해 하는 얘기들을 듣고 있자면 한없이 초라해지고
비참해지는 나를 자주 발견하게되어 내 스스로 그들을 피했건만..

" 마지막 세번째는 뭔가요? "
" 그 나머지도 꼭 아셔야 합니까? "
" 네 듣고싶네요 "
벌써 소주병은 두병째 바닥을 보이고
한갑의 담배도 눈에띄게 갯수가 줄어간다.

" 손님들이...음식맛이 없대요. 아주머니가 해 주시는거에 "
" 무슨... "

더는 말하고 싶지않았다.
내가 음식을 만드는것도 아니고, 주방에서 만들어 놓은 음식 식탁에 놓아준거 뿐인데...
미리 준비??양념으로 넣으라는 양만큼 넣어준거 뿐인데...

서서히 이 자리가 지겨워지며 짜증이 날거 같았다.
이건 세상을 살아가는데 배우는 지혜가 아니라
마치 고문을 당하는거 같아 그자리를 툭툭털고 일어나고 싶었다.

" 잘 알았읍니다. 참고하지요. 그리고...그동안 감사했읍니다 "
" 아주머니도 수고많으셨읍니다. 계산외에 추가돈 내고 가겠읍니다.
마음놓고 드시고 가세요 "

푸힛~ 헛바람새는 웃음이 나온다.
남편에게 버림받아 놓으니 세상 모두가 날 버리는것만 같아
일어나는 발걸음이 휘청거려진다.

담겨있는 돈의 무게라도 느끼고 싶어 봉투를 열어본다.
툼벙~ 하고는 봉투위로 한방울... 눈물이 떨어진다.
이돈을 벌기위해 난 그리도 악착을 떨었던가.
어깨와 팔의 통증때문에 몇번을 움추리고 감싸안았던가.
허위허위 발걸음이 허공을 내 지르고
전신으로 내리쏟는 육신의 아픔에 그리도 이를 악물었는데...

술탓인가?
서러움 탓인가?
돌아오는 발걸음이.. 내내 무겁기만 하다.
이젠..어디가서 무얼해야하나?
바라본 하늘에는 추적추적 빗방울만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