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눕는 이여
아침에 상가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음식 냄새가 진동한다. 생선을 굽고, 고깃국을 끓이고, 부침질을 하는 구수한 냄새가 빈 속을 두드리면 나는 마음이 흔들리곤 한다. 오늘만 딱 생선구이를 한 번 먹을까. 부침개라도 하나 사들고 갈까. 그러다가 낯선 음식점을 기웃거리기가 심란해 그냥 지나친다. 뱃속을 향해 마음으로 소리친다. 식탐으로 요동치는 네가 진정 나인가.
가게로 들어서면 할로겐 등을 켜고 청소기를 밀고, 걸레질을 하고 물건을 진열한 뒤 커피를 내린다. 커피를 한 잔 마신다. 하루일과를 점검하며 어제의 기록들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본다. 자신이 없다. 어딘가 실수가 있을 것만 같다. 초조하다. 거래처 몇 군데에 전화를 걸거나 선약이 없던 손님을 받고 있으면 가게주인이 나타난다. 흠 잡을 데가 없는 그녀이다. 내게도 각별히 배려를 하고 장사도 잘한다. 워낙 공사다망 하다 보니 성미가 급하고 작은 일들은 잘 잊어버리는 반면, 중요한 문제는 정확히 기억해 불쑥불쑥 체크를 하고 그것이 명확하게 진행이 되고 있지 않으면 호되게 나무라곤 한다. 실수투성이며 일의 완급을 파악하지 못하는 나는 늘 그것이 불안하다. 그녀의 보조자로서 그녀를 돕기 위해 이 곳에 출근하는 것이지만 순간 답답하고 그녀의 존재가 불편하다.
그런 자신에게 화가 난다. 본격적으로 손님이 몰려들기 전에 이른 점심을 먹으러 죽 집으로 향한다. 죽 한 그릇이 많게 느껴질 정도로 식욕이 없다. 공양게를 떠올리며 마지막 숟가락을 놓는다.
'이 음식은 어디에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는 받기가 부끄럽지만, 마음에 일어나는 욕심 버리고 도업을 위해 이 공양을 받습니다.
이곳에서 일하기 전에 나는 몇 년 동안 신장을 다스리지 못했다. 스승이신 서 교수님께서는 나의 체질이 소양인 인 것을 알려주고 체질에 맞는 음식만 먹기를 권유했으나 오랜 식 습관을 바꾸기는 쉽지 않았다. 점점 신장이 제 기능을 잃고 나는 무리하게 이뇨제를 오랫동안 복용하였다. 작년 겨울에는 약 중독으로 온몸이 뚱뚱 부어 올랐다. 약을 끓고 옥수수수염을 다려먹었더니 조금 부기가 빠졌지만 이미 체중은 엄청나게 불었고 몸 구석구석에 가려움증과 부스럼이 일어났다. 뿐만 아니라 팔 다리의 관절이 기운을 못 차리고 늘어졌다.
그러던 차에 지금의 이곳에서 일을 하게 됐고, 마침 같은 상가 내에 죽 집이 있어 녹두죽을 먹기 시작했다. 아직도 약 기운이 몸 속에 퍼져 있는 듯해 그것을 빼내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뻐거덕거리기만 하던 온몸의 기관들이 시나브로 제 기능을 찾아 가는 것이었다. 딱히 녹두죽의 효과라기보다 맵고 짠 음식물이 아니라는 것과 소식의 효과가 아닐까하고 생각이 든다.
위가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눈 귀 코 혀를 다 동원해 자기의 요구를 드러내는 반면, 신작은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다. 좀처럼 그가 뭘 원하는지 알 수가 없다. 다만 무리한 요구다 싶으면 조용히 일손을 놓아 버리고 돌아눕는 여인 같다.
며칠 전에는 하루종일 유난히 분주했는데 밤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과학 강연회에 아이들이 참가해 데리러 가야 했다. 피곤해서 발걸음을 떼기가 무거웠다. 강연이 끝나려면 시간이 좀 남아 있어 나는 기운을 차려 보려고 근처 분식 점에 들어갔다. 라면과 가래떡에 야채를 넣어 고추장으로 볶아낸 라볶기가 먹고 싶었다. 오랜만에 먹어 보는 얼큰한 맛이 입안에 서 씹을 사이도 없이 위 속으로 빨려 들었다. 위는 폭군이다. 음식은 씹고 있으면 빨리 들여보내라고 위벽을 두드려 댄다. 혀나 목구멍은 그의 요구에 밀려 전전긍긍하다가 재대로 맛을 즐기기도 못했는데 얼마만큼 제 주머니를 채우면 금방 문을 닫으려 한 그래서 또 그것들이 어울려 있는 내 몸은 불난을 일으킨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 날 밤부터 소변이 시원스럽고 못하고, 온 몸이 붓는 거였다. 얼굴에 트러블이 일고 사지에 기운이 빠졌다. 신장이 또 일손을 놓아버리고 돌아누운 것이다. 나의 뱃속을 들여다보면 불화가 잦은 한 가정을 지켜보는 듯 하다. 그러한 가정을 다스리기가 쉽지 않다.
내가 아는 선배 중에서 어떤 모임에서건 그가 원치 않아도 자주 리더로 부상하는 이가 있다. 그의 리더적 원칙은 간단하다. 가장 작고 어려운 사람을 기준 삼아 회칙을 정한다는 것이다. 요즘 그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아무런 요구도 없는 듯 조용히 뱃속 깊은 곳에 숨었다가 무리한 일 거리인 듯 싶으면 작용을 멈춰 버리는 신장이 가장 작고 어려운 그 사람은 아닐까? 뚱뚱 부어오른 몸을 들여다보며 뱃속 신장의 반란을 지켜보며 나는 또 묻는다. 그런 반란과 저항이 또 나인가?
작고 보잘것없는 몸뚱이 하나마저 진정 나랄 것이 없는 온 세포가 나름대로의 뜻과 욕망을 품고 아우성치는 중생계의 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내 속에서 돌아눕는 이여. 나는 그를 위해 또 자극이 없는 음식을 골라 소식을 하며 눈 귀 코 혀를 동원해 맛난 음식을 들여보내라고 아우성치는 위와 타협의 길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