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여섯살 난 둘째 아들 녀석이 유치원에서 시무룩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분명히 오늘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었구만..'
누구랑 싸웠나...?''
혼자 이런 생각으로 두 팔을 벌려 덥석 들어 올렸다.
그 왕방울 같은 두 눈에선 금방이라도 눈물이 뚝 하고
떨어질 것 같았고,두 팔로 내 목을 더 세게 끌어안고는
울먹이면서 말했다.
"엄마,박 희준이라고 알지?...희준이가 다른 유치원으로 갔어,
그래서 나 속상해.."
이름은 남자 같지만 얼굴이 희고 몸집이 작아 인형같이 생긴
같은 반 여자 아이였다.
"그래,어느 유치원으로 갔어?...그래서 휘령이가 속상한거야?..
미처 대답도 못하고 드디어 울음을 터트렸다.
아이스크림을 사서 들고서야 눈물을 그치고는 말문을 연다.
"엄마,그런데 나 희준이가 안 오니까 보고 싶어...그래서
지금 편지 쓸거야..보고 싶다고,다시 오라고...."
아직 글을 잘 몰라 나에게 대필을 요구했다.
아니,벌써 여섯살 난 아들의 연애편지를 대필하다니....
원래 대필을 시키는 사람들이 연애를 더 잘한다더니....
연애편지의 전문은 이러했다.
..희준아,나,너 보고싶어..
니가 유치원 안 오면 내가 너무 보고 싶을 거야..
그런데,건강해야 돼..
니가 아프면 맘이 아파..
안 봐도 건강해야 돼..
언제 만나..
잘 있어..
몸이 아파 유치원을 자주 빼먹곤 하던 아이였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이 녀석의 마음에도 그게 걸렸었나보다.
난 그 편지를 대필하면서 웬지 모를 마음이 뭉클함을 느꼈다.
벌써 우리 아들 녀석이.....그런것 보다....
이렇게 남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볼 수 있는 아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그 아이의 엄마에게 몇줄의 글을 덧붙여 같이 우체통에
집어 넣고 오는길에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엄마,희준이가 이 편지 받으면 내 생각 할까?.."
그럼,생각하지...물론....
누군가를 좋아 할 수 있다는건 아주 행복한 마음이니까.....
따가운 가을 햇살을 받으며 우린 행복의 웃음을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