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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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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시일반


BY baramandgurm 2002-12-08

십시일반

금방 전동차가 떠났는지 승강장은 비어 있었다.
신문을 파는 부스 옆의 의자에 앉았는데 한 노인이 많은 빈 의자를 놔두고 하필이면 내 옆에 바짝 붙어 앉는다. 지저분하게 뒤엉킨 반백의 머리가 어깨를 덮고 핏기라곤 없어 보이는 창백한 얼굴에 초췌한 양복 차림인데 회색 칼라에 알록달록한 뱃지 만이 어울리지 않게 아침햇살에 반짝였다. 테이프를 덕지덕지 붙인 누더기 종이 백을 끌어안고 머뭇거리며 내 눈치를 살피는 듯 하더니 음료수 한 잔은 뽑아다 달라며 동전 한 잎을 내밀었다. 내가 마지못해 뽑아다 준 사이다를 소리나게 한 모금 들이킨 후 다시 또 종이 백을 뒤적거려 동전 한 잎을 내민다. "새악시두 한 잔 마셔" 이쯤 되자 성가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냥 슬쩍 자리를 비킬까하다가 일단 사양을 했다. 그러나 노인은 한사코 내게 음료수 한 잔을 사주고 싶다고 막무가내였다. 진작에 자리를 떴어야 했는데 후회가 됐지만, 나는 명분을 못 찾고 둔전거리다가 동전을 받아 들었다. 노인은 천진스럽게 웃으며 커피를 마시는 내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봤다.

전동차가 와서 우리는 앞서거니 뒷서거니 차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갑자기 노인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한 쪽 팔에만 몸을 의지하고 바닥을 기는 것이었다. 예의 그 누더기 종이 백을 사람들에게 들이밀며 "선상님들 복 많이 받으십시오. 자자손손 번창하고 복되기를 기원합니다."라고 말한 후, 집에 마누라가 중병을 앓고 있는데 병원 한 번 못 가보고 끼니마저 거르며 죽어가고 있고, 자신도 이렇게 몸이 성치 못하니 십시일반 적선을 베풀어 달라고 했다. 돈을 주거나 말거나 일단 목적한 사람을 똑바로 올려다보고 마치 성직자가 기도를 하듯이 유창한 말로 그들 집안을 축복해 주는 것이었다. 노인은 내게도 모르는 척 종이 백을 들이밀며 우리 집안을 축복하였다. 나는 엉겁결에 주머니에서 잡히는 대로 돈을 집어서 백에다 넣었다. 참 독특한 구걸 행각이다. 그 행색에 비해 형형하게 살아 있는 눈빛과 당당한 목소리가 뇌리에 좀처럼 지워지질 않는다. 곰곰이 생각할수록 그것이 적선인지 구걸인지 경계가 모호하다. 물질에만 가치를 둔다면 돈을 주는 사람이 적선을 베푸는 것이겠지만 노인의 진지한 기도는 물질 이상의 가치를 지닌 듯 하다. 당신의 열악한 삶을 드러내어 자비심을 일깨우고 또, 당신과의 관계에는 개의치 않고 모든 이를 축복하는 태도가 남 다르다.

화엄경에 이르기를 가장 으뜸인 첫 번째 이치를 얻는 데는 교만한 마음을 없애야 한다고 했다. 어떻게 교만한 마음을 없애느냐는 선재의 물음에 문수는 '나는 죽은 사람과 다름없이 생각하고 형상을 무너뜨리고 발우를 들고, 남에게 먹는 것을 빈다. 먹을 것을 빌어서 내 몸을 기르니 목숨은 완전히 남의 손에 달렸다. 걸식하는 음식은 사람이나 짐승이 남긴 것이니 제가 싫다고 버려야 내가 먹게 된다'고 했다. 노인의 모습에서 문득 화엄경의 한 구절이 간절하게 생각되어지는 것은 어쩐 일일까.
진묵 대사가 출가 후 한 점 혈육인 누이의 집을 찾아갔다. 누이는 궁색한 모습으로 동생이 큰스님이 되셨으니 이제 좀 잘 살게 해 달라고 애원했다. 대사는 그런 누이에게 아무런 대답도 없이 딴청을 부리다가, 돌아가면서 모월 모일 모시에 귀한 손님을 모셔 올 테니 음식을 장만 해 줄 수 있느냐고 오히려 어려운 청을 하였다. 그녀는 그런 동생이 야속하였으나 때가 되자 형편껏 음식을 장만하고 집안을 깨끗이 치워 손님 맞을 준비를 하였다. 그런데 스님을 따라 온 무리들은 그 행색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몰골들이었다. 다리를 저는 이와 외눈박이에 온갖 누더기 차림인데다가 더러운 냄새가 진동하는 거렁뱅이 한 패를 끌고 와서 어렵게 장만한 음식을 남김 없이 먹어 치우며 떠들어댔다. 그녀는 부아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투덜대며 그들을 냉대했다. 밤이 이슥하여 그들이 자리를 뜨자, 대사가 안타깝게 누이를 나무랐다. 복을 받게 해 달라고 해서 십육나한을 모셔 왔더니 그렇게 푸대접을 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노인의 모습이 깨달음을 얻고자 구도의 길을 가는 수행자의 모습으로도 보이고, 자비를 가르치러 온 보살의 모습으로도 보이는 것은 내가 과민해진 탓일까. 어쨌든 노인이 말한 대로 십시일반 자비의 손들이 그의 종이 백을 든든하게 채워 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십시일반, 열 사람이 한 숫갈씩 밥을 덜어 한 사람의 밥그릇을 채우는 일, 얼마나 그립고 아름다운 풍경인가. 거기에는 주는 이도 받는 이도 없다. 오고 감이 없다. 다만 함께 어울려 가는 이들의 공존의 조화가 있을 뿐이다. 생각해 보면 세상의 어떤 부자라도 그에게 인연을 맺은 사람들의 십시일반의 성품에서 재물을 얻게 된 것일 터이고 저 걸식하는 노인도 문득 낯선 사람과 차 한잔을 나누고자 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