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진학즈음
우리집이 속된말로 폭삭 망했었다.
우리가족은 뿔뿔히 흩어져
참담하니 그지 없게 살았다.
한참 감수성이 예민했을 때
나는 시골에 계시는 할머님집에서
학교를 다니기로 했다.
학교가까운 곳에 사는
외숙모님이 나를 받아주셨으면 좋은데
당신 자식들도 벅찬터라 내게 그러한 인심은
후하게 베풀지 못하셨던것 같다.
나는 매일 마다 새벽다섯시에 일어나
모래알같은 아침밥을 먹고
여섯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면
커다란 소나무가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다른 학생들과 함께
버스를 기다리다 타는 다소 힘겨운 부지러운
생활을 했었다.
야간 자율학습이 있다.
그날은 호우경보가 있었던 날이라
다른날보다 일찍 자율학습을 마쳤다.
다른 아이들은 도시에 사니
금새 십분마다 오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귀가하면 될것을
나는 새까만 우산을 들고
한시간마다 오는 버스를 타기위해
어두컴컴해지는 하늘 밑에서
두두두둑 빗방울 소리를 들어가며
입꾹다문 사춘기 소녀의 모습으로
그렇게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버스를 승차할즈음은
내 주변에 나와같이 교복입은 학생이
자취를 감춘 늦은 시간이였다.
다행히 버스를 타서
자리 한구석 차지하고
창문깨질듯 내리는 빗줄기에
따로 사시는 부모,형제 생각을 했다
빗줄기만큼이나
내 눈물도 못지않게
흘러내렸으리라...
날은 어둑어둑 해져
눈앞에 주먹하나 갖다대도
안보일만치 어두워졌다.
헌데 일이 생겼다.
그나마 늦게라도 와준 이 시골버스가
도저히 땅이 질어
마을까지 갈수가 없다는 것이였다.
버스로 마을까지 가는 시간도
대략 삼십분이 걸리는데
이 길을 어찌 걸어가라고 이러시나...
사람들은 대충 대여섯명이 남았는데
모두 가깝게 사는지
별 군소리 않하고
다들 바삐 내렸다.
난 겁이 많다.
게다가 이 시골길을 혼자서 걸어가는건
묘지옆에서 밥먹는것하고
다를바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도저도 할수없는 입장이라
할머니 집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우산이 찢어져라 내리는 빗소리.
주변이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직 빗소리에 세상이 조용할뿐이였다.
비를 흠뻑 맞아본 사람은
비로 인해 몸에서 따뜻한 김같은게
모락 모락 나오는걸 알것이다.
나는 추운줄도 모르고
계속 한시간 반이상을
뛰다시피 걸어갔다.
검은 나무,검은 흙,검은 세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길을 알고 걸어간게 그나마 신통하다.
마침내 마을입구에 다달았을때
마중나온 할머니를 만났다.
울음이 울컥 나올뻔했으나
꾸욱 참았다.
그리고 늦은 시간 할머니께서
차려주시는 따뜻한 밥상에서
비로소 마음을 진정할수가 있었다.
다시 그 입장이 된다면
나는 그 버스를 도로 타서
시내로 다시 들어가
무작정 숙모네로 발길을 옮기는
비위를 택할것이다.
도저히 나는 그 어두운 시골숲길을
혼자서 감행하며 갈수없을듯 하다...
비가 무척이나 무섭고
슬픈 날로 기억되는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