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동안
호랑이 새끼치게 무성했던 풀들이
다 말라져 드러누워 있는걸 보며
라이타 챙겨들고 듬성듬성 불을 붙여 놓고는,
행여 방향 잃은 바람이라도 불세라
풋대나무 긴가지 꺾어들고 옆에 불보초를 서고 있다.
계절은 분명 겨울이건만
요며칠 나는 겨울속에서 봄을 살고 있는듯,
해마다 봄철이면 하던 움직임을,
해도 바뀌지 않았는데,
봄이 오려면 아직 멀었는데도
부지런이 넘치는 친정 엄마의 성화에 못 이기고,
울며 겨자 먹으며 들러리 서는 식으로 하고 있는거다.
"미리 풀을 태워 놓아야 풀씨가 죽는겨~"
뒤돌아 오는 연기에 눈을 감기운채 더듬거리는데
주머니의 손전화가 몸을 흔든다.
인터넷에서 삼십년만에 만난 짝꿍였던 친구가
이년을 전화로만 만났었는데,
뜬금없이 내려 오고 있다고 시골에 그대로 있으란다.
큰길까지 나가서 기다리는데,
질러 가버려서 다시 되돌아 오는 벽돌색 차를
저만치서 바라보며 나는,
살이 뽀얗고 무척이나 도시스럽던 친구의 얼굴을 되살리며
늘 왠진 몰랐지만 건강치 않았던 그 친구가
지금은 건강해져 있는지까지
밀렸던 궁금함들이 기다란 내목을 더 길게 늘이고 있다.
크락숀 신호로 내차 문을 열고 들어서는 친구에게
나는 한쪽손을 내밀어 꽉잡고 한참이나 있으면서
화장기 없어 창백해 뵈는 얼굴에다
가늘고 힘없는 손의 촉감까지,
삼십년의 시간이,
하얀 칼라의 옷을 벗어 놓고 지나간 시간이
결코 짧지 않았던 시간이었음을 실감하고 있었다.
"그래, 나도 네눈에 너처럼 보이겠지."
너도 나처럼 속으론 감짝 놀라고 있을거야.
겉으론,
"그대로네, 변하지 않았어. 여전히 살은 못 쪘구나"
하면서말야.
삼십년만에 만난 친구에게서 나를 본날,
하늘로 오르는 하얀 연기내음에 취해서
호랑이 새기칠만큼의 풀들을
아픈 다리 절뚝이며 몽땅 다 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