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저녁에 백선생하고 전화를 하더니 불쑥 내일 우리 집에 와서 저녁 식사를 하자고 한다.
일종의 집들이인 셈이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나는 순간 당황한다.
내일은 일요일인데 언제 교회 다녀오고 시장 다녀와서 음식 준비를 하나 하는 생각에…
하지만 곧 마음을 접는다.
쉽게 빨리 할 수 있는 음식 서 너 가지만 하고 기쁜 마음으로 하자고…
내 입장 헤아리지 못하고 불쑥불쑥 손님 초대하는 것을 남자의 당연한 권리로 알고 사는 남자하고 살면서 터득한 지혜다.
그런 한 편에는 스스로의 음식 솜씨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도 하다.
그런 남편과 살다 보니 쉽고 빠르게 음식 만드는 요령도 생긴 것이다.
그리고 나서 생각하니 미국에 와서 처음 했던 집들이 생각이 난다.
어렸을 적 가장 싫었던 일 중의 하나가 부엌에서 어머니를 거드는 것이었다.
언니가 둘이나 되었으니 그 일이 내 차지가 되는 경우도 거의 없었으나 어쩌다 일꾼들이 많은 날 어머니가 수저라도 상에 놓으라고 하면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아버지 따라서 논에 갈래.”
언니들이 결혼하고 난 후도 부엌하곤 거리가 멀었다.
딸년들을 저리 키워서 나중에 어떻게 하려느냐고 작은 어머니에게 핀잔을 받을 만큼 어머니는 우리를 떠 받들어 키웠으니 굳이 싫다는 부엌일을 내게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작은어머니 핀잔에 어머니는 오히려 혼자서 가끔 궁시렁 거렸다.
“우리 큰 딸 아무것도 안 가르쳤어도 시집가서 귀염 받고 살림 잘 하고 잘 만 살더라...”
언니들이 자라서 결혼하고, 대학 기숙사로 떠나고, 동생과 둘이 남았을 때 부엌에 가기 싫은 나는 동생에게 부탁하기도 했다.
“부엌에 가서 먹을 것 좀 챙겨 주라.”
착한 동생은 누나의 터무니없는 요구에 묵묵히 먹을 것을 차려 주기도 했다.
그러거나 다 자란 처녀가 어머니를 찾아 온 동네를 헤맸다.
그래서 발견한 어머니를 보고 말했다.
“엄마, 나 배고파. 밥 좀 줘!”
같이 있던 동네 아줌마들이 어처구니 없어 와르르 웃어도 어머니는 날 야단치지 않고 집에 와 밥을 차려주곤 했다.
그렇게 자란 내가 음식을 잘 할 리 만무했다.
결혼하고 어쩔 수 없이 부엌일이 내 차지가 되었을 때, 오월에 결혼해서 십이월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호박나물을 먹었다고 남편이 다른 사람들에게 흉을 볼 만큼 할 수 있은 음식 수가 적었다.
결혼하고 손님 치를 일이 있을 땐 큰 언니가 와서 다 해주었다.
언니는 날 더러 손님 오기 전에 미장원에 가서 머리 손질하고 옷 갈아 입고 손님 맞이할 준비나 하라고 했다.
그런 언니의 도움으로 서울에서의 집들이는 내 일이 아니었다.
언니의 도움이 아니라도 결혼하고 오년이 지나도록 내 음식 솜씨가 늘 기회는 없었다.
맞벌이에 연년생의 두 아이를 기르느라고 늘 정신없이 살았고, 그저 음식은 한끼 한끼 때우고 넘어가는 것으로 족했으니까…
미국에 와서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남편과 같이 시장에 가는 길이었다.
잠깐 사무실에 들렸다 오겠다고 자동차 안에서 기다리라던 남편이 돌아와 자랑스럽게 말했다.
모두들 내일 우리 집에 와서 저녁 식사를 함께 하자고 했다고.
그 것도 부부동반에 아이들까지 모두…
집들이인 셈인데 마치 자기가 음식이며 청소며 모든 것을 알아서 할 사람처럼 태연히 말했다.
참고로 울 남편 차려 놓은 밥상도 들어다 먹으면 남자 체면에 손상이 가는 줄 알고 살던 사람이었다.
첫아이를 임신한 내가 한 달에 9kg이나 몸무게가 빠져도 꼬박꼬박 밥 시켜 먹은 사람이니까…
그 이야긴 각설하고 본론으로 돌아가서,
아무리 부엌일하곤 거리가 먼 나도 집들이가 어떤 일인지는 대충 계산할 수 있었다.
부부동반에 아이들까지 네 집이면 기본이 16명에 우리 식구와 혼자 와 있는 남편 친구까지 더하면 20명이 넘는 숫자다.
놀라서 넋을 잃은 내게 남편은 오히려 핀잔 비슷이 말했다.
우리 식구 먹는 것처럼 하지 뭘 그러느냐고…
시장에 가서도 무엇을 살 지 몰라 망연히 서있는 내게 남편은 말했다.
내일 손님 치를 사람이 왜 아무 것도 사지 않느냐고…
“글쎄, 뭘 어떻게 해야 될 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아서...”
내 모습이 딱해 보였던 지 함께 시장에 갔던 남편 회사 동료가 나서서 이것 저것 사라고 권했다.
부인 없이 혼자서 공부하러 온 사람이라 울 남편보다는 음식에 대해 아는 것이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두 남자가 메뉴도 재료도 정하다시피 해서 시장을 봐 왔다.
그 뒤는 어떻게 되었을 지 상상에 맡긴다.
그 날 참석했던 어느 부인이 나중에 이런 말을 한 적도 있었으니까
“어? 재원이 엄마도 음식 할 줄 아네!”
세월이 정말 약이다.
지금의 나는 음식 솜씨 좋은 여자로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되니까…
그만 수다 떨고 냉장고를 살펴 봐야겠다.
오늘 저녁 집들이 손님을 위한 메뉴는 무엇이 좋을까 알아보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