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生 폼死
여름에 식구들과 함께 오이도엘 갔다. 집에서 불과 삼사십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인데도 그동안 망설이다가 작은 아이가 게를 잡고 싶다고 졸라대는 바람에 피서겸 해서 다녀왔다.
오이도엔 넓은 갯벌이 있다. 갯벌에서는 사람들이 조개를 캐거나 게를 잡고 있었다. 마지못해 떠난 나들이이긴 했지만 막상 바닷가에 다다르니 갈매기가 날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 마음이 상쾌했다. 아이는 신이 나서 바지를 걷어붙이고 갯벌에 들어가 게를 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작은 게들이 어찌나 날쌘지 아이의 손에 잡히질 않았다. 금방이라도 잡힐 듯이 다리를 쳐들고 있다가도 손을 내밀어 잡을 요량이면 날쌔게 바위틈이나 뻘속에 난 구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어쩌다 붙잡히면 집게발마저 끊어 버리고 도망을 치는 녀석들이 동작이 느린 아이의 손에 잡힐리가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은근히 게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아이처럼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올리고 게를 잡기 시작했다. 녀석들을 잡으러 뻘이 있는 곳으로 가자 고인 물가에서 바글바글 모여 놀던 녀석들이 삽시간에 구멍 속으로 들어갔다.
옳지! 요놈들! 나는 녀석들이 들어간 구멍에 손을 넣고 파기 시작했다. 그러자 구멍속으로 숨은 게가 손끝에 만져지고 녀석들이 하나 둘 내 손에 잡히기 시작했다.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있는 아이에게 나는 의기양양하게 잡은 게를 보이며 병에 담았다. 병 속에 갇힌 녀석들은 그렇게 날쌘 모습과는 달리 작은 눈을 굴려 대며 다리를 들었다 내렸다 하며 시위를 했다.
정신없이 게를 잡다보니 어느새 바닷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면서 나는 문득 이 녀석들이 뻘이 있어야 살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커다란 비닐 봉지를 구해서 뻘을 가득 퍼 담았다. 게를 잡는 것조차 싫어하는 아내는 차 시트조차 진흙으로 범벅을 만들어 버리니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그런 아내의 표정에 아랑곳없이 나와 작은 아이는 게가 우글거리는 병을 끌어안고 즐거워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세숫대야에 뻘을 담고 그곳에 게들을 풀어놓았다. 마침 수리산 계곡에서 잡아온 가재를 작은 그릇에 넣어 놓아 밤마다 버석거리는 소리 때문에 잠을 설친다고 아내의 투정이 심하던 참이었는데 그 와중에 이십여 마리나 되는 불청객들이 들어왔으니 아내로서는 여간 심란한 일이 아니었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낮에는 얌전히 있던 녀석들이 밤만 되면 같이 버석거린다. 아내는 그것이 못마땅해 인상을 찌푸리나 작은 아이와 나는 집에 들어오기 바쁘게 세숫대야 앞에 쭈그리고 앉아 게를 관찰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게들이 우리 집 식구가 되던 그 날 나는 집 근처에서 친구들과 밤늦도록 어울려 놀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아내로부터 호출이 왔다. 빨리 집으로 오라는 것이다.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밤늦게 들어가도 잔소리를 늘어놓는 일이 없었는데 느닷없이 소리를 지르며 빨리 들어오라니..... 나는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할 겨를도 없이 집으로 뛰어갔다. 허겁지겁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서는데 아내는 어쩔 줄 모르며 비명을 질렀다. 영문을 모르고 당황해 하는 나에게 아내는 대답도 못한 채 방바닥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온 몸에 뻘을 뒤집어 쓴 게들이 다리를 쳐들고 방바닥을 온통 휘젓고 다니는 것이었다. 집게를 쳐들고 이불위로 올라가는 놈. 옷장 밑으로 기어들어 가는 놈. 녀석들은 바위틈으로 도망을 칠때만큼이나 빠른 동작으로 거실을 온통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아내가 거실에서 잠든 사이 세숫대야에 넣어 놓은 돌멩이를 올라타고 떼를 지어 기어나와 아내의 머리맡에 와서는 집게를 쳐들고 있었으니 아내가 놀랄만도 하였다.
아무리 미물이라도 저를 싫어하는 것을 아는 법이다. 아내가 오죽 녀석들을 미워했으면 잠이 든 사이 슬그머니 기어나와서는 다리를 쳐들고 시위를 했을까? 안타깝게도 그 후 게들은 하나 둘 뻘을 뒤집어쓰고 죽기 시작하더니만 며칠 지나지 않아 한 마리도 남질 않았다. 뻘에 넣어 두면 살 줄 알았던 나의 생각이 어리석었다.
며칠 전에 다시 오이도엘 갔다. 바닷가에 가보니 녀석들은 여전히 다리를 쳐들고 폼을 잡고 있었다. 겁도 없이 다리를 쳐든 채 눈을 부라리고 있는 폼이 가관이다. 고놈들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웃음이 난다. 보잘 것 없는 체구에 온 몸에 진 흙을 뒤집어 쓴 채 다리를 쳐들고 있는 폼이 바로 내 모습이다. 폼生폼死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