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썩 이는 파도에 몸을 띄우고 싶은 여름이 왔다.
바다,계곡,산,강...곳곳에서 사고가 끊이지 않는
계절이 시작된 것이다.
그 여름..우리 부부에게도 잊혀지지 않는 사건이 있었다.
큰애가 첫돌을 지나고 얼마후의 일이라 벌써 오래 전
사건이지만 매 여름이면 생생히 떠오르는 일이니...
3박4일을 계획으로 시댁식구 모두가 만리포로 향했다.
난 동해쪽이 고향이라 서해바다는 처음이었다.
시누들과 고모부들과 어머니 아버님….
대식구가 움직인 여행이었다.
우리가 짐을 푼 곳은 어떤 서양 신부님의 땅이라고 했다.
거기는 여러 채의 한국 풍 집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고,
바다에 들어가려면 열쇠로 바다근처에 쳐진
울타리를 열어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큰형님은 이곳을 어렵게 빌렸다고 하셨고
그 만큼 사람들도 많지 않아 좋았다.
일찌감치 도착한 우린 점심을 해먹고 언제나 그랬듯이
대식구들이 먹고 남긴 흔적들을 말끔히 치우고 나서야
나도 가족들이 있는 곳엘 갈 수 있었다.
남편은 나와 함께 물에 들어간다고
모래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집에서 아이 미끄럼틀로 쓰던 고무 미끄럼틀을
튜브대용으로 쓰겠노라고 가지고 들어갔다.
이것이 화근이며 또 이것이 우리를 구해준
은혜로운 물건이 될 줄은 그때까지 아무도 몰랐다.
나도 수영을 못하기 때문에 우리 아이를 위해 준비한
어린이용 작은 튜브를 가지고 바다로 향했다.
그때가 점심식사 후니까 시간상으로 거의
물이 들어올 때 였나 보다.
우린 그런 상황에 대한 사전지식도 없었고,
어디에도 그것에 관한 안내문이 없었고
더구나 동해에서만 살아온 나에겐 더욱 생소한 일이기만 했다.
그와 내가 물에 들어가는데 다른 가족은
다시 나오는 분위기였다.
순간적으로 우리도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 순간 앞으로 갈 수가 없었다.
앞서 나가시던 큰 고모부랑 거의 한발차 이였다.
아마도 손을 내밀면 잡을 수 있는 거리였을 것이다.
“저좀 잡아주세요..~~”
장난스럽게 말을 하는 나에게 웃음만 보여주고 걸어 나가셨다.
첨엔 정말 장난이었다.
그런데 순식간에 발에서 모래가 없어졌다.
“어..저 못 나가요~~”
몇 초 사이에 심각함이 느껴졌다.
그땐 이미 고모부는 저만치 가고 없었다.
믿겨지지가 않았다.
단 몇 초 사이, 단 한발차이로 고모부는 나가시고
나와 그는 나갈 수가 없었다.
“자기야..나 발이 땅에 안 닿아”
“어..나도..어 나도 그래..”
그리고는 그는 가져온 미끄럼틀에 몸을 기대보려하지만
자꾸만 균형을 잃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했다.
“자기야...성연씨..”
이미 상황은 최악이었다.
삽시간에 우린 바다 한가운데에 남겨졌고
바깥으로 나간 시댁 식구들은
그의 이름을 부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자기야, 그거 빨리 버려”
자꾸만 물속으로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그를 보면서
미끄럼틀을 버리라고 소리쳤다.
그것만 아니었음 아마 그는 바깥으로 나갈 수가 있었을 것이다.
"성연씨,허엉~~자기야..빨랑 뒤로 누워라 성연씨~~..”
어디선가 바다에 갇혔을 땐 배형 자세로 있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한 얘기가 번뜩 생각났었다.
그땐 이미 우리 사이도 멀어져 가고 있었다.
“성연씨~~~..뒤로 누워~~~허~엉..”
그 외치는 소리를 들었는지 그가 뒤로 눕는 것이 보였다.
그때부터 우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우린 바다 한가운데서 누군가가 구해주기 만을 기다려야 했다.
이미 해변 가에선 울 시아버님의 아들 이름 부르는 소리,
시누들의 동생 부르는 소리,
고모부들의 처남 부르는 소리들이 끊임없이 들려 왔다.
“성연씨~~~정신차려 흑흑”
“저기 튜브가 오고 있으니 정신 차려야 돼~~자기야..허엉”
점점 멀어져 가는 우리사이를 어쩔 수 없이 바라만 보아야 하는
한심하고 무서운 상황이었다.
순간적으로‘이대로 죽는 거구나, 그래서 바다에 빠져죽는다고
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쪽 해변에서 안전조끼를 입은 두 사람이 막 뛰어오는듯하더니
갑자기 자리에 서서 이쪽을 쳐다만 보고 있었다.
‘아, 이젠 정말 죽는구나. 저 사람들도 못 들어오나보다.엉~~엄마…’
“성연씨~~성연씨~~정신차려 자기야~~”
"성연씨~~..저기 튜브가 온다. 자기야 걱정하지마~허엉엉~~"
대답 없는 그를 향해 어떤 용기라도 주어야 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무서웠다. 대답 없는 그가 무섭고,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이곳에
이렇게 놓여진 내가 무섭고, 앞으로 죽을 거라는 사실이
너무 무서웠다.
순간 뒤에서 어떤 기척이 느껴졌다.
세상에….119 대원들이 타고 있는 통통배였다.
한 대원이 나를 향해 뛰어내렸다.
“전 괜찮아요..아저씨 우리 신랑 구해주세요, 우리 신랑 죽어요..우리 신랑이요 흑흑..”
“아줌마 정신차려요. 이 튜브도 바람이 빠지고 있어요. 아저씬 괜찬아요.”
배가 먼저 그가 있는 곳으로 갔다.
아마도 그를 먼저 배위로 끌어올렸나 보다.
내가 배위로 갔을 땐 그는 이미 한바탕 바닷물을 쏟아낸후였다.
그를 보자, 살아있는 그를 보자 난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
리기 시작했다.
긴장이 풀리니까 그 떨림이 멈추지를 않았다.
“성연씨~~허엉..자기야..나 너무 무서웠어.. 흑흑”
“그래,나 괜찮아..”
잠시 후 반대편 부두로 우린 도착했고 구경 나온
동네 아주머니들은 내 손을 붙잡고 다행이라고
다행이라고 한마디씩 하셨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119 아저씨들은 어제 그곳에서 물에 빠진
한 남자의 시신을 찾기 위해 나왔고, 파도가 심해져서 찾기를
포기하고 돌아가던 중
남편이 손에서 놓아버린 노랑색의 미끄럼틀이 뒤집어 지는 것을
한명의 119대원이 보고 혹시나 해서 와본것이라고 한다.
노랑색의 그 미끄럼틀이 우릴 구한 것이다.
만약 그때 119가 그곳에 없었더라면....
이듬해에 사건 119 프로그램에서 우릴 취재하겠노라고 해서
우리도 걷는 연습해야겠다며(그 프로그램은 항상 출연진들이
지금은 행복하게 살고 있다면서 걸어가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보여주곤했었다.) 웃을 수 있었지만 다시 생각해도 정말 끔찍한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섰었던 사건이었다.
이 여름 바다를 찾는 모든 분들은 물놀이용 튜브가 아닌 것은
절대 가져 가지 마시고, 서해 바다를 찾는 분들은 특히
밀물과 썰물에 대한 확실한 정보를 알고 가시라고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