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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가을 음악회


BY 쟈스민 2002-10-28

언젠가 보험외판원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에서
그분은 나의 남동생을 잘 아는 분이라 하시며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동생은 나를 꼽았다는 말을 한다.

순간 나는 아주 큰 부끄러움이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일고 있었다.

내가 그 아이에게 과연 그럴만한 누이가 되었는지 ...
아니 앞으로도 그럴수 있을런지 ...

늘 별로 말수가 없는 그 아이는 세명의 동생 중 유달리 정이 가는 아이였다.

있는 듯 없는 듯 자신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일 잘하고,
전혀 사교성이 없을 것 같아 보이지만 친구들과의 사귐에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원만한 아이 ...

동생이 다니는 회사에서 주최하는 음악회가 며칠전 열렸다.

기특하게도 음악 좋아하는 이 누이를 떠올리며 바쁜 가운데 잠시 우리집에 들러서
음악회 초대장을 놓고 갔단다.

클래식 음악회는 참 오랜만이다.

사는게 뭔지 늘 그 틀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아가는 생활속에서
잠시 이탈을 꿈꾸어 보게 하는 그런 시간이 무척 소중하게 느껴진다.

다행히도 만7세 이상 입장가능하다는 안내를 받고
엄마의 퇴근시간 맞추어 직장으로 택시 타고 온 아이들에게
모처럼 외식을 시켜주고는 약속한 친구를 만나
우리 넷은 음악회가 열리는 곳으로 차를 몬다.

약간은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지는 늦은 가을 저녁에...

아름다운 오케스트라의 선율에 몸을 맞기고는
서로 엄마 옆자리에 앉겠다며 토닥이는 딸아이의 손을 가만히 잡아 본다.

엄마의 어깨에 기대어 잔잔한 선율에 잠이 솔솔 오는지 작은아이는 단잠에 빠진 듯 보인다.

음악을 하며 사는 사람은 아니지만, 누구보다도 음악을 하고 싶어 했으며,
누구보다도 그 세계를 동경하며 사는 나로서는 이보다 더 행복한 시간이 있을까 싶다.

눈을 감고 고운 음악에 취해 본다.

잠들기에는 너무 아깝고 귀한 시간이기에 온몸으로 음악을 호흡하고
그 감미로움으로 잠시 지금의 현실을 잊는다.

여러 악기들의 조화로움으로 빚어진 아름다운 작품에 취하여
가을 저녁이 곱게 물든다.

머리가 희끗 희끗한 피아니스트의 연륜이 묻어나는 피아노 연주...

모시한복 곱게 입고 나오신 어느 국악인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그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다 보니 눈물이 고여온다.

누구 하나 도드라져서도 안될것 같은 조금씩 서로 절제되어야만
절로 아름다운 화음으로 비로서 하나 되어질 것 같은 오케스트라의 향연에서
우리 사는 삶도 꼭 그러하리라는 혼자만의 생각을 내려놓으며
친구와 난 말없이 바라만 보아도 좋은 그윽한 눈웃음을 짓는다.

고객관리 차원에서였는지 모르지만
정성껏 차려낸 다과상...
그리고 따뜻한 헤즐넛 한잔...
가을저녁 아름다운 정취가 더할 수 없이 좋다.

고맙고 감사한 마음으로 돌아서는 발걸음이
어느새 쓸쓸한 가을저녁을 훈훈히 데워주고 있다.

이유없이 우울하고, 마음이 황량해지는 이 계절엔
무슨 일인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으로 감정을 공유하고,
따뜻하게 뭔가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그 어떤 것보다도 치유력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말없이 속깊은 남동생 덕분에 ...
모처럼 추억에 남을만한 좋은 시간을 보냈다.

좀더 따뜻한 누이가 되고 싶은
그런 저녁이다.